코로나 애프터 3년의 희망에 대하여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학을 공부하며 발견한 사실이 있다. 움직이는 역사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역사의 움직임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날아오른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 20일 코로나 3년을 맞이하며 떠오른 경구다. 우리나라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것은 2020년 1월20일이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미국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역사가 이제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눠진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프리드먼 어법을 따르면, 지금 우리나라는 ‘AC 3년’의 현재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년 이 코너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의 사회학에 관한 글들을 더러 써왔다. 오늘 칼럼이 마지막 글이기에 이 팬데믹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의 미국 연구년 생활을 포함해 내가 발견한 코로나 2년의 인류사는 ‘축소와 귀환의 시대’였다. 사람들의 사회적 활동은 축소됐고, 개인과 가족으로 귀환했다. 이는 자료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일 방영된 한국방송공사(KBS) 특집방송의 조사 보도에 따르면, 54.4%의 응답자들은 지인으로부터 멀어졌다고 했다. 더하여 응답자의 41.7%가 ‘기운이 없고 무기력하며’, 30.5%는 ‘의심이 많아지고 사람들을 경계하게 됐다’고 답변했다.

주목할 건 감정의 인과적 연쇄다. 다시 말해 코로나19로 촉발된 불안은 불신으로, 불신은 다시 고립으로 확장해 왔다. 불안과 불신과 고립의 상태에서 공존과 통합과 연대라는 계몽의 서사는 힘을 잃는다. 사회적 관계는 느슨해지거나 끊어지고, 나와 가족의 욕망은 극대화되고, 삶의 장기적이고 의미 있는 기획은 무력화된다.

이 ‘고립의 시대’는 ‘단절의 시대’와 짝을 이룬다. 사회적 고립은 단절을 낳고, 단절은 사회라는 공동체를 다층적으로 분단시킨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념·계급·세대라는 오래된 균열에 젠더라는 새로운 균열이 복합적으로 결합돼 사회는 구심력이 아닌 원심력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한때 환대라는 미덕이 칭송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타자에 대한 무시와 혐오와 증오의 감정은 증폭된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다. 3개월 동안 머물렀던 미국 역시 축소와 귀환, 고립과 단절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난 미국인들은 외롭다는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고, 주식시장 변동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관심이 매우 높았고, 아이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크게 걱정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미국 민주주의의 우울한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국 이외의 서구 다른 나라들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축소와 귀환, 고립과 단절의 시대의 다른 이름은 ‘욕망과 국가의 시대’다. 코로나 시대에 더 이상 욕망의 민낯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욕망의 일차적 대상은 더 많은 화폐였다. 구조화되는 불안과 불신 아래 자신과 가족을 지켜줄 수 있는 건 돈과 부동산뿐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자본주의라는 현실을 고려할 때 물질문명에의 욕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신문명이 서서히 망각되는 옛 연인의 희미한 이름처럼 쇠락해 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욕망의 시대는 ‘국가의 시대’와 짝을 이룬다. 점점 파편화돼 가는 사회 속에서 화폐와 함께 우리 인류의 삶을 지켜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주체는 국가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국가는 무한경쟁 규칙의 보증인이자 생명과 안전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의 위상을 제고한다. 이 과정에서 ‘스트롱 맨’이 각광받고, 새로운 권위주의가 헤게모니를 획득한다. 민주주의가 예기찮은 지점에서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게 코로나 시대의 정치·사회적 풍경이다.

지금 나의 이러한 관찰이 과도한 비관적 해석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만큼 코로나19 팬데믹이 미친 영향은 심원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축소와 귀환, 고립과 단절, 국가주의와 화폐지상주의 시대라는 코로나19의 그늘 아래 우리 인류가 위태롭게 서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희망을 일궈내려면 객관적이고 냉정한 현실 분석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아직 공존과 통합과 연대라는 계몽과 희망의 서사가 유효할뿐더러 지금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이 방향으로 나아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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