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파파’ 다시 보기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스웨덴에 살면서 한국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스웨덴에는 정말 라테파파가 많나요?”였다. 스웨덴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단어지만, 해외 및 국내 언론들은 한 손에 라테를 들고, 다른 손으로 유아차를 끌며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육아휴직 중인 스웨덴 아버지들을 묘사하는 단어로 라테파파를 사용하고 있었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이러한 현상은 스웨덴이 부모의 동등한 육아휴직 사용을 독려하는 제도를 잘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1995년부터 각 부모가 육아휴직의 일정 기간을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부모 할당제를 두면서 아버지들의 육아휴직 사용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스웨덴의 육아휴직 제도는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성평등한 육아휴직 사용의 모범사례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스웨덴 사회보험감독위원회는 아버지의 육아휴직 사용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1994년부터 2017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아버지들을 대상으로 자녀의 출생 이후 첫 2년 동안의 육아휴직 사용기간을 조사했다. 연구에 따르면 2017년에 태어난 자녀를 둔 아버지들 중 18%는 육아휴직을 전혀 내지 않았으며, 15%는 육아휴직을 30일 미만 쓴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아버지 중 33%는 육아휴직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지 않거나 적게 사용한 아버지들에게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우선 저소득·저학력 아버지들이 고소득·고학력 아버지들에 비해 육아휴직을 쓰지 않는 비율이 높았다. 자영업과 일반 직장인, 직업 유무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다. 자영업자인 경우 일반 직장인보다 육아휴직을 적게 사용했으며, 무직인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들보다 육아휴직 사용률이 낮았다. 출신 배경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는데 외국 출신 아버지들이 스웨덴 자국 출신 아버지들보다 육아휴직 사용비율이 낮았다.

이 연구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아버지 집단이 육아휴직 사용에서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저소득·저학력 아버지들은 노동시장 내 지위와 소득이 불안정하기에 높은 소득대체율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망설였다. 자영업자 아버지 역시 일반 직장인과는 달리 사회보장 지위가 불확실한 탓에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다. 외국 출신들은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 부족,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 탓에 육아휴직을 적게 사용했다.

스웨덴 아버지들의 육아휴직 사용 격차는 현재 스웨덴 노동시장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모든 부모에게 동등한 육아휴직 사용을 보장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학력, 외국인, 영세 자영업자, 장기 실업자 등 노동시장 내 취약계층에 속한 아버지들이 이로부터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아버지들을 보다 나은 일자리로 이끄는 것이 성평등한 육아휴직 제도 확립을 위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연구진 역시 육아휴직 미사용 아버지 집단의 노동시장 참여와 육아휴직 사용 유인 등을 확인하기 위한 지속적인 관찰 및 조사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아버지의 육아휴직에 있어 걸음마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은 과연 육아휴직 사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해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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