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긴 겨울엔 나우 자자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밤 긴 겨울엔 나우 자자

소나무는 양지바른 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소나무가 이 추운 겨울날 푸른 잎을 매달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다. 동지 지나 아직 짧은 햇살일망정 광합성에 쓰려는 사철 푸른 나무의 시도가 사뭇 애처롭다. 하지만 광합성 작업에는 햇볕 말고 물도 필요하므로 땅 아래 소나무 뿌리로 흐르는 물이 얼어 있으면 안 된다. 누런 솔가리로 아랫도리를 감싼 소나무는 태양으로부터 광속으로 8분이나 걸려 찾아온 빛 에너지를 애면글면 보존한다. 이제 소나무 잎 안에 든 엽록체는 이산화탄소를 고정하여 적은 양이나마 포도당을 만들 수 있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이와 달리 일찌감치 잎을 떨군 활엽수들은 지난해 저장해둔 탄수화물을 쓰면서 삼동을 난다. 그렇기에 겨울 활엽수는 동물과 하등 다를 바 없이 호흡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이것이 여름보다 겨울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약간 높은 이유다. 교과서를 보면 식물은 포도당을 만들고 산소를 내놓지만, 동물은 포도당을 부숴 에너지를 얻으며 공기 중으로 이산화탄소를 되돌린다고 기술한다. 마치 호흡은 동물만의 특권이라는 듯. 하지만 폐가 없고 심장이 없다 해도 식물은 쉼 없이 숨 쉰다.

그렇다면 숨을 쉰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흔히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일을 호흡이라고 한다. 산소를 저장하지 못하는 탓에 동물은 죽을 때까지 이 행위를 반복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호흡은 포도당이나 지방을 천천히 태우는 일이다. 잘 알다시피 연소의 결과물은 물과 이산화탄소다. 물론 호흡을 통해 에너지도 만들어 몸을 움직이고 바이러스와도 맞서 싸운다. 이런 일은 세포 안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서 벌어진다. 식물 세포에도 미토콘드리아가 잔뜩 들어 있다. 그러므로 식물의 호흡은 전혀 놀랄 만한 사건이 아니다. 게다가 엽록체도 갖춘 식물은 동물과 반대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한 일을 한다. 식물은 포도당을 만들고 동시에 소비한다. 엽록체는 지표면에 쏟아지는 빛에서 최대 1%의 효율로 탄수화물을 합성한다. 효율은 낮지만 인간을 포함한 종속 생명체 모두는 이러한 식물의 빈약한 생산성에 기대어 산다.

활엽수들이 겨울 광합성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은 밤에 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햇빛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빛은 전자(電子)의 무한 공급원인 물을 깨서 이산화탄소를 고정할 주재료를 마련한다. 밤을 밝히고 세탁기를 돌리는 전기도 한낱 전자의 흐름일 뿐이다. 태양은 전자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식물은 그것으로 이산화탄소를 고정한다. 4만6630개 원자로 구성된 엽록체 속 광계(光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문제는 이 전자가 광합성 산물인 산소를 화학적으로 아주 좋아한다는 점이다. 산소에 찰싹 붙은 말썽꾸러기 전자는 여기저기 튀어 다니며 단백질과 유전자를 건드리고 다치게 한다. 이때 물 깨는 작업에 종사하는 광계 단백질이 취약해서 먼저 손상을 입는다. 광합성을 하느라 힘에 부치는 낮에는 미토콘드리아가 나서서 엽록체를 헌신적으로 돕는다. 에너지를 보충해주기도 하고 활성산소를 제어하는 일꾼을 파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밤에는 광합성 기제가 멈춘다. 그런데 식물은 빛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기계 스위치를 내리는 것일까? 사위가 어둑해졌다는 말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땅이 태양에서 쏟아지는 에너지원인 광자(photon)에 등을 돌린다는 뜻이다. 이제 식물은 더는 물을 깰 수 없다. 전자 흐름이 끊기는 것이다. 그에 따라 포도당을 만드는 핵심 효소들이 모양을 극적으로 바꾼다. 전자가 풍부한 낮에 단백질은 두 팔을 곧게 뻗어 활발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한다. 황 원자를 갖는 아미노산인 시스테인이 바로 그 팔에 해당한다. 반대로 밤엔 팔짱 끼듯 두 팔을 거둬들이고 일과를 서둘러 마무리한다. 단백질의 이런 형태 변화는 전자 두 개를 더하거나 뺀 상태를 반영한다. 즉 더는 전자가 도달하지 않는 밤이 오면 식물은 효소에서 두 개의 전자를 몰수한 다음 이를 과산화수소에 전달하여 전혀 해가 없는 물(水)로 바꿔버린다. 동녘에 해가 솟으면 이와 정반대의 일이 벌어져 단백질이 기지개를 켜고 광합성에 돌입한다. 확실히 생명은 전자의 흐름임에 틀림없다. 전자는 이산화탄소, 포도당을 거쳐 산소로 흐른다. 식물에서 동물로 흐른다. 하지만 밤에는 그 유장한 흐름이 끊긴다. 태양 전지에서 플러그가 뽑힌 밤은 죽음처럼 적요하다. 그러니 밤엔 겸손한 맘으로 일찍 자자. 밤 긴 겨울엔 나우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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