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한발 멀리서

설 밥상에 이재명·윤석열만 오르겠는가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기업은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는다. ‘창조적 파괴’로 혁신을 추구하고 ‘야성적 충동’으로 세상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다. 위대한 기업에는 ‘기업가 정신’이 깃들어 있다.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그런데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과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익만 좇는 탐욕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달 초 넷플릭스 1위를 기록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을 보면서 든 의구심이었다. 이 영화는 6개월 뒤 거대 혜성과 충돌해 멸망할 위기에도 선거만 신경 쓰는 정치, 대중의 엿보기 심리를 자극하는 언론, 돈벌이 궁리만 하는 기업 등 사회 시스템을 풍자한 블랙코미디다.

영화에서 빅테크 기업인 베쉬의 총수는 혜성에 있는 희귀 광물 가치가 140조달러에 달하니 혜성을 30개로 쪼개 지구에 떨어뜨리자고 한다. “피해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물로 가난, 사회적 불공정, 생물다양성 상실, 이 모든 문제들이 과거의 유물이 된다”고 주장한다.

성공했다면 정말 신천지가 열렸을까. 거대한 산더미가 하늘에서 떨어지며 생기는 ‘감당할 수 있는 피해’는 가난한 다수에게 몰렸을 것이지만 천문학적 수익은 베쉬가 독점했을 것이다.

영화 속 기업의 수익 추구 방식은 대한민국 현실에서 상당히 일반적이다. 총수나 대주주 일가 등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고 비용은 정부나 사회, 개인이 분담한다. 민주화 이후 기업들은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사회화’하며 성장을 도모했다.

광주에서 두 번의 대형 사고를 낸 현대산업개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현산은 지난해 6월 동구 학동4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쓰러지면서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를 냈지만 사고수습 비용은 세금으로 처리됐다. 사망사고를 낸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도 재벌 기업들의 작업 현장에서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필연적 결과다. 대기업은 이익을 늘리고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그 부담은 하청업체 노동자가 죽음으로 떠안는다. 지난 16일 포항제철소 내 포스코케미칼 공장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그 전에는 한국전력 하청업체 소속 30대 노동자가 면장갑을 끼고 작업하다가 2만2000V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졌다. “일터의 죽음에 경악하고 전후 사정을 따지며 경건하게 슬퍼할 시간도 없다. 또 다른 죽음이 밀려들기 때문이다.”(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 일하다 죽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재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과잉 규제라며 우려하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물적분할(주요 사업부를 자회사로 만드는 기업분할)이나 쪼개기 상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익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불이익은 다수가 부담한다. 아니, 다수의 불이익이 있어야 소수의 이익이 가능한 구조가 됐다.

실제로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을 물적분할해 만든 LG에너지솔루션의 주식시장 상장 과정에서 2차전지 사업을 보고 LG화학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봤다. 반면 대주주나 총수들은 추가 자금 투입 없이 알짜 회사의 지배권을 강화한다. SK케미칼, NHN, 현대중공업, 만도 등 ‘물적분할 후 상장’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물적분할은 대주주의 합법적 갑질?’이라는 증권사 보고서까지 나왔겠는가.

‘국민 기업’ 카카오는 ‘국민 밉상기업’이 됐다. 수수료 인상, 골목상권 침해에 이어 쪼개기 상장뿐 아니라 상장 한 달 만에 경영진이 대거 주식을 팔아치우는 ‘경영진 먹튀’까지 공분을 샀다. 쪼개기 상장을 주도한 카카오페이 대표는 4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뒀지만 이후 주가는 폭락했다. 기업 성장의 과실을 주주들과 함께 나누는 경영철학보다는 ‘최대 이익의 신속한 실현’이 성공의 잣대가 된 것이다.

올해 설 밥상은 대장동, 김건희, ‘철수정치’ 등 선거 이슈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만큼 후보에 관한 품평도 치열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 얘기뿐 아니라 기업들의 행태도 설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쪼개기 상장 기업에 투자했다 주가 폭락에 울상짓는 동학개미도 무수히 많고, 대기업 로고가 붙은 사업장이라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에 허탈해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어서다. 정치 얘기는 의견이 달라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겠지만 이들 기업에는 이구동성으로 비난이 쏟아지지 않을까.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