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지킬 영웅을 보고 싶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누가 이길까? 큰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결과 예측이 큰 이슈다. 구경 중 제일은 싸움 구경이라지만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 편안하게 감상만 할 유권자는 없을 것이다. 선거를 40여일 앞두고서야 막장 소재가 사그라들고 정책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후보의 철학이랄까, 각 정당이 추구해온 뿌리 깊은 고민의 흔적이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시방 오르내리는 정책 대결, 인물 대결, 정당 간 대결이 과연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헷갈린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최근에 미국 대학교수인 후배가 페이스북에 한국 영화의 도깨비와 서양 영화의 마법사를 비교해 놓았다. 그중 우리 도깨비는 개인의 원한이나 사랑이 주요한 모티브라면 서양 마법사는세계의 위기나 평화를 위해 힘을 발휘한다는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힘뺀 농담에 진실이 담기는 법. 만화광 출신의 심리학 교수가 놀이삼아 쓴 글이지만 공감이 되었다. 가상의 인물, 가상의 드라마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 이루고 싶은 완전한 꿈과 욕망의 상징이다. 도깨비를 통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 딱 개인적인 것밖에 없는 나라에서 지도자라도 좀 큰 뜻을 품어주기 바란다면 욕심일까.

지금 세계는 장기간의 팬데믹에 갇혀 있고 ‘글래스고 기후 합의’ 후 각국 정부와 기업은 탄소감축을 향한 멀고도 험한 길에 올라섰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존 케리 신임 기후변화 특사는 2021년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 뉴욕타임스의 호주 산불 기사를 인용하여 “전쟁이 시작되었고, 우리가 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후 1년 동안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에 따르면 서부지역의 산불과 텍사스의 한파, 동부지역의 허리케인 등 10억달러 피해 규모의 기후재난이 20개 이상 발생하였고, 피해액은 약 1450억달러(약 174조원)에 달하였다. 미국이 이 정도이니 가히 지구는 기후재난이라는 점령군의 발밑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 국가 지도자는 물론 기업가들도 이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1월9일자 보도에 따르면 빌 게이츠가 투자한 펀드 Breakthrough Energy Catalyst(BEC)가 150억달러(18조360억원)를 탄소포집, 그린수소, 항공연료, 에너지 저장기술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BEC의 목표는 ‘친환경 기술을 만들어내는 데 돈이 들어서 가격이 올라가는 그린프리미엄’을 없애는 것이다. 유익한 기술이 가격 때문에 외면받지 않도록 싼값에 보급하려는 취지이다. 기후전쟁에서 기업가들이 대응할 무기는 친환경 기술이라는 신념하에 이를 빨리 적용할수록 기후문제도 해결하고, 재난을 피하며 신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 생태계도 키워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빅픽처이다. 또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4월부터 엑스프라이즈 재단과 함께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탄소감축 기술을 공모하고 있다. 프로젝트 슬로건이 ‘인류의 가장 큰 위협에 맞서자’이고 대상 한 팀의 상금이 무려 5000만달러(600억원)이다.

머리가 쭈뼛 서는 비전이 아니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우리도 그런 지도자를 가질 때가 되었다.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정부, 기업, 시민사회 각각에서 지구문제 해결에 공헌할 히어로의 등장을 기대한다. 혼자 싸울 수는 있지만 혼자 이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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