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사진가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김지연

삼천원의 식사 연작. 2014. 김지연

우리 동네 죽림집에서 끓여주는 뚝배기라면은 2500원이었는데 다른 곳에 비해 싸고 맛있었다. 깍두기와 배추김치는 덤으로 나왔다. 막걸리에 밑반찬을 푸짐하게 주는 선술집 할머니는 무릎 관절염 수술을 받은 뒤 문을 닫고 말았다.

늦게 겨우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에 눈이 떠지면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안 올 때는 어둡고 칙칙한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선다.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뭘 좀 먹어볼까 생각했다. 술꾼도 아닌데 얼큰한 해장국 생각이 났다. 라면 반 개에 시큼한 깍두기 국물을 넣고 끓이니 제법 시원하다. 새벽에 먹은 라면이 의외로 맛있다. 불현듯 한겨울에 길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누가 이런 따뜻한 음식을 주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아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10대 때 맨 처음 혼자 서울로 오던 날, 호남선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 늦었다. 정릉에 살고 있는 먼 친척을 찾아가느라고 시내버스를 탄 것이 잠이 들어 종점에서야 눈을 뜨게 되었다. 그 당시 정릉 버스종점은 시골이나 마찬가지였다. 통행금지 시간은 임박했고 추운 겨울에 주변은 깜깜했다.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살펴보니 허름한 판잣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우선 소변이 급해서 창문을 두드렸다. 한참 만에 할머니가 나오셨고 혼자 사는 할머니는 내가 서울 첫걸음인 시골 촌뜨기라는 것을 아시고 당시에는 귀한 라면을 끓여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따뜻한 이불 속에 몸을 녹일 수 있게 해주셨다. 지금도 그 따뜻하고 퀴퀴하고 정겨운 이불 속의 온도를 잊을 수 없다. 그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막막한 도시 생활에 위로로 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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