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기억…고집과 고민 사이읽음

이광표 서원대 교수
광주 전일빌딩 8층에서 내려다본 옛 전남도청.

광주 전일빌딩 8층에서 내려다본 옛 전남도청.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선 광주의 옛 전남도청. 언제부턴가 도청의 별관 입구엔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복원 추진’이라고 하면, 옛 전남도청 건물이 훼손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1980년 5월 광주’의 상징공간인 도청 건물이 훼손되었다니….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2002년, 정부는 광주의 아픔을 치유하고 문화적으로 승화하기 위해 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하기로 했다. 위치는 옛 전남도청 일대였다. 2005년 공모를 거쳐 설계안이 확정되었다. 2008년 착공 무렵, 4층짜리 도청 별관을 철거하기로 한 설계안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도청 별관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 것이다. 별관 철거안과 별관 존치안이 맞섰다. 논란이 치열해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설계 변경을 논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부분 철거’로 결론이 났다. 문체부와 광주시가 합의한 모양새였다.

공사는 진행되었다. 도청의 본관과 별관을 연결하는 통로를 모두 철거했다. 별관 건물은 30m를 남기고 24m를 잘라냈다. 거의 절반을 없앤 것이다. 잘라낸 자리엔 철제빔 구조물을 세워 아시아문화전당의 주 진입공간으로 만들었다. 1980년 시민군의 거점이었던 본관 건물은 1, 2층의 내부가 훼손되었다. 도청 회의실 내부도 원형을 잃어버렸다. 도청 뒤 경찰국 건물은 1, 2, 3층을 모두 터버렸다. 건물 곳곳에 남아 있던 총탄 자국도 상당수 사라졌다. 역사의 현장, 피의 흔적은 그렇게 훼손되었고 2015년 아시아문화전당은 문을 열었다.

옛 전남도청 일대를 아시아문화전당의 터로 정한 것은 그 공간의 역사성, 상징성 때문이다. 즉 5·18의 흔적을 온전히 기억하자는 것이었다. 그게 본질일 텐데, 그 본질이 무시당했다. 그것도 한 개인이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서 말이다. 누군가는 “2008~2010년 찬반 논의를 거친 결과이기에 수용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부분 철거는 엄연한 역사 훼손이다. 소중한 근대유산을 파괴한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이후에도 도청 별관을 둘러싼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복원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부는 복원추진단을 발족시켰다. 2019년 10월의 일이다. 본관, 별관, 회의실, 경찰국 등 6개 건물을 최대한 원형으로 복원하게 된다.

반토막 난 별관도 되살아날 것이다. 그런데 별관의 4개층 가운데 1, 2층의 일부를 뚫어 아시아문화전당 통로로 활용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별관의 원형복원이라 할 수 없다. 복원한다면서 또다시 별관을 훼손하는 꼴이다. 왜 이렇게 통로(진입 공간)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아시아문화전당의 메인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중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별관 건물을 훼손하면서까지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좀 더 창의적인 고민을 통해 진입 동선(動線)에 변화를 줄 수는 없을까.

옛 전남도청 맞은편에 전일빌딩이 있다. 1980년 5월, 계엄군이 무차별 헬기사격을 가했던 건물. 이 빌딩에선 245발의 탄흔이 확인되었다. 한때 건물 철거 얘기가 나왔으나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건물을 보존했다. 2011년 광주시(광주시도시공사)가 매입해 2020년 리모델링을 마쳤다. 빌딩의 10, 11층은 탄흔을 살려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건물을 보존하고 5·18 기억의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다. 1980년의 분위기를 느끼기가 어렵다. 당시의 긴박함과 처절함이 보이지 않는다. 전일빌딩에 서려있던 일상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뽀얗게 치장한 인테리어가 ‘80년 광주’의 기억을 방해하는 것 같다.

전일빌딩 8층엔 깔끔한 카페가 있다. 창가에 앉으면 옛 전남도청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의실, 본관 그리고 반토막 난 별관. 역사의 흔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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