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돈 룩 업’읽음

박병률 경제부장

RE100에 대해서는 “네?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했다. EU 택소노미는 “EU 뭐라는 거, 저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블루수소는 눈만 껌뻑거렸다. 재생에너지는 “미래산업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고 했다.

박병률 경제부장

박병률 경제부장

RE100과 EU 그린 택소노미, 블루수소, 재생에너지는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기후변화다. 네 가지 질문들에 답을 못했다면 명백하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 혹은 인식이 전혀 없다는 거다.

시청률이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는 지난 4일 <2022년 대선 후보 토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그랬다. 그는 RE100만 몰랐던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주요국들의 핵심 관심사이다. 당연히 지난 미국 대선에서도 핵심의제였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공약도 여기에 맞춰졌다. 기후변화는 코로나19 대응, 경제회복, 인종적 평등과 함께 바이든 행정부의 4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심지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 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기후변화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럴진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제1야당 유력 후보의 기후변화 인식이 이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제20대 대선은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2019년 미국의 슈퍼볼 광고에서는 맥주회사 버드와이저의 광고가 화제가 됐다. 밥 딜런의 ‘블로인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를 배경음악으로 버드와이저의 상징인 클라이저데일이 풍력발전 터빈과 함께 등장했다. 그 화면 위로 ‘풍력으로 양조하겠다(brewed with wind power)’는 자막이 지나갔다. 이날 이후 버드와이저 캔에는 ‘RE100’을 의미하는 라벨이 인쇄돼 있다. 이게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다. 2014년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이 시작한 글로벌 캠페인으로 2050년까지 전 세계 모든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온라인에서 돈다는 글을 엿보니 RE100은 일개 시민단체가 만든 인증마크에 불가하다는 주장이 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다. RE100을 추진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중요하지 않다. 글로벌 산업은 이미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실존하는 무역규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4~5년 전부터 유럽과 북미 바이어들은 국내 제조사들에 제품생산에 사용되는 전기의 일정 부분을 재생에너지로 사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공모주 최대주였던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2050년보다 20년 앞당겼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과 유럽 바이어들이 2차전지를 사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왕에 할 것, 먼저 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뜻이다. RE100에는 이미 350곳에 육박하는 글로벌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정보기술(IT) 기업인 애플, 구글뿐 아니라 BMW, 샤넬, 스타벅스 등도 포함돼 있다.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다. 당장 다음 정권의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모를 수도 있지”라며 큰소리를 칠 일이 아니다. “가르쳐 달라”며 여유 부릴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일본은 기업들이 요구해 2030년 재생에너지 비율을 22%에서 38%로 높였다. RE100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더 보급해야 한다고 기업들이 정부를 압박한 탓이다. 기업들이 요구한 목표는 50%였다.

RE100, 그린 택소노미, 블루수소는 맞춰도 그만 못 맞춰도 그만인 장학퀴즈 문제가 아니다. 차기 정권이 철학을 갖고 세심하게 대응해야 할 국가산업전략이다. 모르면 머리를 빌리면 된다지만, 그래도 뭔지는 알아야 머리도 빌릴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래도 녹색성장이라는 국가전략은 있었다.

제1야당 대선 후보는 “RE100은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고 말한다. 야당 대표는 “태양광사업을 확대하면 중국 기업만 좋다”고 한다. 야당이 내세우는 대안은 원전 확대다. 기후위기를 정략적인 이유로 무시하는 정치인을 꼬집기 위해 만든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가 애덤 매케이 감독의 <돈 룩 업(Don’t look up)>이다. 야당의 주장은 혜성이 이만큼 다가왔는데도, 원전 때문에 ‘돈 룩 업’하자는 얘기로 들린다.

버드와이저는 2025년까지 맥주 양조에 사용하는 모든 전기를 100% 풍력에서 얻겠다고 했다. 3년 남았다. 차기 정부의 임기 내다. 이미 혜성의 꼬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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