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왈 예술경영가 고양문화재단 대표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코심)가 조만간 ‘국립’ 타이틀을 달 모양이다. 코심은 1981년 국립교향악단이 해체되자, 당시 상임지휘자 고 홍연택이 함께 떠난 단원을 모아 1985년 설립한 민간 오케스트라다. 운영이 여의치 않자 2년 뒤 서울 남산 국립극장 소속 단체들의 연주를 맡으면서 국고지원을 받기 시작해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단체로 있다.

정재왈 예술경영가 고양문화재단 대표

정재왈 예술경영가 고양문화재단 대표

한동안 문체부 산하 기관과 단체 가운데 국립 타이틀을 부여받는 경우가 흔치 않았는데 지난해 정동극장이 국립정동극장으로 새 출발했다. 이어 코심까지 거론되는 것을 보면, 근자에 정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한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문체부 산하에는 국립 명칭을 단 기관과 극장, 단체가 꽤 많다. 국립중앙극장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국악원,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미술관 등 우리나라 문화예술 진흥의 근간을 이루는 굴지의 공간과 단체들이 포진했다.

정확한 법리적인 근거를 떠나 일반적인 사전적인 의미로 국립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나라의 예산으로 세우고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랏돈이 쓰이고 그 역할이 막중하다보니 한국에서 국립은 엄청난 영예와 권위를 상징한다. 유독 국가 지원이 많은 문화예술계에서 그런 경향은 더욱 도드라져 국립 명칭을 부여하는 문제는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코심이 국립 명칭을 달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경쟁자 중 한 곳인 KBS교향악단이 발끈했다. KBS교향악단은 해체된 국립교향악단이 자신의 전신임을 강조하며 국립 연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역사적인 배경으로 볼 때 ‘국립은 내 것’이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번 특정 기관의 국립화 과정과 논란을 보면서 솔직히 정책당국의 판단이 옳은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근거도 명분도 약해 보여서 그렇다. 말이 나온 김에 코심을 예로 들면, 상당한 예산을 국비로 지원받고 있긴 하나 독립된 재단법인이다. 문체부 직속기관인 국립극장이나 국립박물관과는 처지가 다르다. 독립법인이라면 국비 지원이란 사실보다 독립성과 자율성이 더 강조되어야 한다. 다만 국립발레단과 국립오페라단은 2000년 국립극장 소속으로 있다가 재단법인으로 독립하면서 국립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보자. 우리말로 국립과 왕립으로 번역되는 ‘내셔널’이니 ‘로열’이니 하는 명칭을 달고 활동하는 저명한 공연장과 단체, 오케스트라, 미술관 등은 적잖다. 영국에는 컨템포러리 공연을 선도하는 런던의 내셔널시어터(NT)와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RSC), 내셔널갤러리가 있다. 프랑스는 문화부 직속으로 8개의 국립공연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도 국립극장과 신국립극장 등 국립기관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어느 국가든 문화예술 기관에서 국립이 갖는 의미는 매우 제한적이며 특별하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로열 칭호는 예술계에 끼친 공로가 지대한 민간단체에 국왕이 ‘칙허장’을 수여하는 구조다. 말 그대로 명예 칭호다. 프랑스도 이와 유사한 국립 라벨(표지부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더욱 제한적이어서 노(能)와 분라쿠(文樂) 등 국가가 직접 나서 보전해야 할 분야에만 국립 명칭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악 중심의 국립국악원과 유사한 목표를 지향한다.

결론은 자명하다. 만약 지속적으로 문화예술 기관과 단체 등에 국립 타이틀을 붙이고자 한다면 정부는 명확한 근거와 원칙을 설정하고 시행하라는 것이다. ‘국립 코심’이 된다면 단원의 기량과 단체의 역량을 어떻게 높일지, 미래지향적인 역할과 목표는 무엇인지 더욱 분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하다면 클래식 한류의 선도자로서 지금보다 몇 배의 국비가 들어가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국비로 지원하고 있으니, 이미 재단법인으로 무리 없이 운영되고 있는 예술단체에 국립 명칭 하나쯤 붙이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그러나 국립 단체 숫자 늘리기가 문화강국의 지표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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