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이명박, 그리고 민주당

이용욱 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한다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갈수록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를 닮아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념을 넘어선 실용주의를 이야기한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이명박식 실용주의와 철학 부재를 덮으려는 윤석열식 실용주의가 같을 수는 없으나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윤 후보는 선거의 가장 큰 대의가 정권교체라고 했는데, 이씨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낙인찍으면서 2007년 대선을 치렀다. ‘이핵관’으로 통했던 이명박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그랬듯 윤 후보 측근 세력은 ‘윤핵관’으로 호가호위 논란을 일으켰다. 이씨는 재임 내내 법치주의를 외쳤는데, 공교롭게도 검찰총장 출신인 윤 후보 역시 법치주의를 앞세우고 있다.

이용욱 논설위원

이용욱 논설위원

두 사람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굳혀가던 와중에 윤 후보가 4대강 사업 복원을 수차례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폐기할 대상으로 4대강 재자연화 사업을 지목하고, 낙동강이 흐르는 경북 상주에선 “이것(4대강)을 잘 지켜서 농업용수와 깨끗한 물을 마음껏 쓰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4대강으로 물이 깨끗해진다는 주장은 검증된 바 없다. 실상은 정반대다. 4대강 보로 인한 수질악화 때문에 ‘녹조라떼’ 유행어까지 나오지 않았던가. 급기야 윤 후보는 “국민약탈 행위는 벌 받아야 한다”며 ‘문재인 정권 적폐’ 수사를 공언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정치보복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은 달갑지 않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퇴행이 윤 후보 집권 후 반복될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났다. ‘여성가족부 폐지’ ‘검찰권 강화’ ‘민주당이 무솔리니와 히틀러(처럼 한다)’ ‘권력층의 국민약탈’ 등 윤 후보의 발언들은 듣기 불편하다. 정치권 입문 당시 실언에 가까웠던 윤석열표 막말은 지지율 상승과 맞물려 험악해지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역대 최저 투표율(63%) 속에 당선되고도 온 국민 지지를 받은 양 역주행했던 이씨와 오버랩된다.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반대편을 손봐줘야 할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선거운동을 넘어선 선동이다. 윤 후보는 패권적 정치교체를 원하는가.

다만 관점을 바꿔 2007년 대선을 복기해보려 한다. 이명박 정권의 독주는 그만의 문제였을까. 이명박과 맞선 대통합민주신당(현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은 없었나. 당시 정동영 민주신당 후보 측은 이씨의 비리만 터뜨리면 승리할 수 있다는 최면에 걸려 있었다. 정권심판론은 강고했고, 정 후보 개인도 당내 경선에서 박스떼기 논란으로 타격을 입었던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 후보 측은 큰 것 한 방으로 여론을 돌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BBK 등은 흐름을 반전시키지 못했고, 당황한 정 후보 측은 이것저것 막 던졌다. 정 후보는 크게 졌고, 후폭풍은 이듬해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권은 무능하고 무력한 야당 덕분에 마음껏 역주행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의 선거전을 보면 2007년의 악몽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수시로 바뀌는 이재명 후보의 말은 좌충우돌하는 당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50% 안팎의 정권교체론을 네거티브로 넘겠다는 발상 자체가 틀렸다.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 공격에 모든 것을 건 듯하더니, 이 후보 부인 김혜경씨 과잉 의전 의혹이 터지면서 역풍을 맞았다. 윤 후보와 신천지 교주 이만희씨의 손짓이 비슷하다며, 윤 후보 신천지 연루설을 펴는 것은 자해행위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86세대 용퇴설은 없던 일이 됐고, 이광재·박재호 의원이 부산에서 골프회동을 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민주당이 절박한 자세로 선거에 임하는지도 의문이다. 이대로 대선에서 패한다면 6월 지방선거에까지 악영향이 미칠 것이고, 민심에 버림받은 공룡야당의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이번 대선의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대다수 조사에서 이 후보가 윤 후보에게 뒤지지만, 오차범위 안팎의 근소한 차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흠집내기식 선거운동을 계속한다면 반등 가능성은 희박해질 것이다. ‘윤석열은 안 된다’ ‘윤석열은 위험하다’는 비판을 넘어 ‘왜 민주당이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게 옳다. 그리고 그간의 오만과 위선, 내로남불 행태에 대해선 진정성 있게 계속 사과해야 한다. 이 후보와 민주당이 자주 소환하는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원칙 있는 승리가 첫 번째고, 그다음이 원칙 있는 패배, 그리고 최악이 원칙 없는 패배다.” 민주당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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