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필요한 정보는?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선거는 직접, 보통, 평등, 비밀의 원칙에 따라 유권자가 가장 ‘선호’하는 후보를 선출하기만 하면 되는 민주주의의 의례적 행사에 불과한 것일까? 주권을 위임받은 당선자는 임기 동안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한 번의 투표로 우리의 5년의 미래가 좌우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작금의 선거에서는 위임자를 뽑는 행위가 마치 인기투표 하듯이 전개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각 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꼭 알고 싶은 정보일지 모르지만 유권자에게는 아니다. 물론 내가 선호하는 후보가 당선할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거의 매일 접하는 가장 중요한 선거 관련 기사여야 할지는 의문이다. 여론 조사 결과를 참조하여 나의 선호를 결정하는 부화뇌동이 바람직한 주권 행사라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수십년 동안 여론조사에 근거한 경마 저널리즘식 보도가 가장 문제 있는 기사 행태라 비판받아 왔다. 그런데 호기심을 자극하여 클릭을 노리는 여론조사 보도는 외려 더욱 만연해졌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더군다나 의견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정보 없이 판단한 의견의 집합이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시키는 진정한 여론이라 할 수 없다. 이번 대선에서 ‘비호감 선거’라는 말이 유행한다. 그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지만, 정말 비호감 선거라면 언론은 비호감을 만들어내는 유력 후보 이외의 후보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게 주권자인 유권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이니까. 만약 비호감의 원인 제공자들이 워낙 유력한 후보라서 이 후보들 사이에서 당락이 결정될 것이 확실하다면 언론은 상대적으로 더 나은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 제공에 노력해야 한다. 정책을 소개하고, 검증하고, 후보자의 이력과 역량에 근거하여 실천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차기 대통령이 헤쳐 나가야 할 중대사들이 참으로 많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사회의 지향, 미·중 열강의 패권 다툼 속에서 주권 수호, 기술 혁명 시대가 야기하는 각자도생의 현실 등등. 이와 관련하여 유권자가 정말 알아야 할 후보들의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 후보자가 관련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기제로서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런데 언론은 ‘비호감 선거’ 프레임에 매몰됐다. 각 후보 진영, 지지 세력이 무책임하게 터트리는 폭로만으로 기사를 생산하기 바쁘다. 그럼 유권자는 무엇으로 판단할까!

물론 일부 언론이 대선 공약 탐구, 유권자 의제 중심의 공약 기사 등 유용한 기사를 생산해 내고 있다. 문제는 일반인이 그 기사를 접하기 참 어렵다는 점이다. 뜻있는 언론인들은 좋은 기사를 내보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 대다수가 기사를 접하는 포털이나 새로운 플랫폼에 의미 있는 기사가 전면에 노출되지 않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을 시민 탓으로 돌리는 건 적절치 않다. 더 중요한, 더 의미 있는 기사를 더 많이 생산하고 그 기사들을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언론이기를 원하는’ 언론 스스로의 몫이다. ‘삼프로 현상’이라는 말이 생겼다. 유튜브니까 할 수 있는 형식의 참신성이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후보자의 생각을 깊이 있게 확인할 수 있었기에 시민들이 호응한 것이다. 그런데 그 점은 기존 언론의 강점 아닐까? 경륜 있는 기자들이 존재하는 기존 언론은 스스로의 강점을 포기하고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정보 생산에 동참하고 있다.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언론사 또는 언론인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지금 당신들이 생산하는 기사나 콘텐츠만으로 유권자가 이번 선거에서 정말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지 묻고 싶다. 대선 후보들이 공약집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언론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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