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야외로 나들이를 왔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합니다. 기분전환도 했으니 이번 나들이의 또 다른 목적인 별미를 맛볼 차례입니다. 예약을 해두길 잘했습니다. 도로변 작은 식당의 마당에 놓인 커다란 무쇠솥에서 이미 요리가 진행 중입니다. 오늘의 메뉴는 닭백숙입니다. 추운 겨울 에너지를 보충하는 데 이만한 것이 또 없죠.
각종 약재를 넣어 건강한 기운이 듬뿍 담긴 백숙에 닭육수로 끓여낸 누룽지죽, 거기에 더해 각종 반찬들이 한상 가득 차려집니다. 요리를 음미하며 주인장의 솜씨에 찬사를 보내다 문득 잊고 있던 또 다른 공헌자가 생각났습니다.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바로 저 무쇠솥입니다.
요리가 맛있어지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열입니다. 열이 가해지면 단단했던 식재료의 조직이 부드러워지고, 여러 가지 반응이 일어나며 기존의 식재료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맛과 향 성분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열이 강할수록 이러한 반응은 더 활발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을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물의 끓는점은 100도이므로, 그 이상으로 열을 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물을 사용하면서도 100도 이상으로 끓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요리는 더 부드러워지고 더욱 맛있어지겠죠. 그 방법은 바로 압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물이 끓는 현상은 액체 상태의 물이 기체 상태의 수증기로 활발하게 변하는 과정입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100도 정도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지만, 만약 공기의 압력이 크다면 더 높은 온도가 필요합니다. 액체인 물이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날아가려면 공기가 내리누르는 이 커다란 압력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죠. 한마디로 더 많은 열 에너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조리기구가 바로 압력솥입니다. 최초의 압력솥은 1681년 프랑스의 과학자 드니 파팽이 발명했다고 합니다. 육류를 고온에서 가열하면서 뼈까지 푹 고아 진한 육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하죠. 이후 다른 요리 분야에서도 활용되었는데요,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의 대명사 KFC의 성공 비결도 바로 이 압력솥에 있습니다. 압력솥으로 튀기면 조리시간이 단축되고 치킨의 육질도 더 부드러워지기 때문이죠.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압력밥솥의 경우는 일반 공기 중보다 약 2배의 압력이 가해집니다. 이 정도면 물의 끓는 점이 120도까지 올라가는데요, 그러면 요리가 더 맛있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쇠솥도 이와 비슷한 원리입니다. 무쇠로 만들어져 엄청 무거운 뚜껑은 내부의 수증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솥 안의 압력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식당 사장님이 이제는 너무 힘에 부친다며 업소용 압력솥을 하나 마련해볼까 한다네요. 그것도 좋겠다고 맞장구치기는 했지만 내심 아쉽기만 합니다. 분명 수고로움은 덜어주면서도 맛있는 백숙이 만들어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저를 이 먼 곳까지 이끌었던 팔팔 끓는 커다란 솥의 정겨움은 사라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