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강국? 문화 격차부터 없애라

도재기 논설위원

‘문화예술 강국!’ 대선 과정에서 또 들어야 했다. 십수년 동안 대선 때마다 반복된 똑같은 외침이다. 정책공약도 별다르지 않다. 구호도, 공약도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은 진지한 고민이 없다는 뜻이다. 경험상 대선 과정에서의 외침과 달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 국정기조 정리 과정에서 문화는 시나브로 사라진다. 있더라도 장식 수준이다. 전례 없는 일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여느 정부와 달리 3대 국정기조에 ‘문화융성’을 넣었다. 문화계가 오히려 놀랐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귀결됐고, 문화계에는 생채기가 남았다. 계속되는 ‘문화 강국’ 외침에도 문화재정은 전체 예산의 1%대에 불과하다. 무려 20여년째 그대로다.

도재기 논설위원

도재기 논설위원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도 ‘문화예술 강국’을 강조했다. 전 국민 문화향유시대 개막, 지역별 문화격차 해소, 문화예술인 지원 확대, K컬처 발전과 문화산업 선진국 도약 등을 공약했다. 인수위가 그리고 있는 새 정부의 문화 밑그림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경험에 따라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지금 한류의 빛나는 성취, 그나마 진척된 문화예술 발전도 정부보다 문화예술인들의 노력 덕분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격차라는 고질병만큼은 치료하기를 기대한다. 공약에서 언급한 지역 문화격차가 아니다. 계층 간, 문화예술 장르 간, 장르 내에서의 격차와 양극화를 말한다. 문화격차는 소득·학력·문화예술 경험과 교육·거주지 등 경제·사회·문화적 자본 차이에서 시작된다. 문화행사 관람률 같은 작은 차이가 커져 고질화된 게 문화격차다. ‘국민여가활동조사’ 등 여러 통계들은 이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수준이라고 경고한다. 문화격차를 줄여 국민들의 문화향유를 얼마나, 어떻게 늘리느냐가 문화 강국의 지름길이다.

문화향유 총량을 확대하되 영화·가요·연예 등과 무용·클래식·미술·문학·연극 등 장르 간 양극화 악화도 개선해야 한다. 개인 취향에 따른 특정 장르의 선호, 편식은 동서고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편식을 보완할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문화격차, 장르 양극화는 문화예술의 근본 토대인 다양성을 훼손한다. 문화예술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창의성을 떨어뜨린다. 사회 불안정성을 높이고 국민들 삶의 질을 낮춘다. 문화 강국들이 문화격차를 줄이는 데 온 힘을 쏟는 이유다.

한류로 대표되는 문화콘텐츠의 성장이 눈부시다.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한 K팝을 비롯해 드라마·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세계 대중문화사를 다시 쓰고 있다. 국가 이미지가 개선되고 소프트파워 순위가 상승한다. 2020년 문화콘텐츠 수출액은 세계 7위다. 문화콘텐츠 산업이 우리 경제의 든든한 기둥이 됐다.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으로 손꼽힌다.

역사적 교훈을 보면, 이 같은 성과를 자랑하기보다 향후 지속 가능한 콘텐츠 마련에 선제적으로 나서는 게 중요하다. 새 정부가 한류 문화콘텐츠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내실을 다져야 할 때란 것이다. 대중이 뜨거운 한류 흐름에 주목할 때 정부는 한편에서 감지되는 차가운 기운을 인식해야 한다. 일방적 문화전파에 따른 정체성 훼손 우려, 문화산업 보호를 내세우며 일부에서 나타나는 견제 조짐이 대표적이다. 한때 한국도 일본 대중문화에 경계심을 가지지 않았던가. 국내외 전문가들이 숱하게 지적하듯 한류 콘텐츠의 지나친 상업성을 경계해야 한다. 경제적 시각만이 아니라 쌍방향적 문화교류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내용의 획일성 극복을 위한 다양성 확보, 넷플릭스에서 보듯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반 강화도 중요하다. 콘텐츠 생산부터 유통, 소비까지 전 과정을 재점검하는 게 새 정부의 몫이다.

새 정부가 해서는 안 될 일도 있다. 문화 다양성·창의성을 짓밟고 문화예술인들을 갈라치기하는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 운용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철칙의 훼손이다. 국제적 망신까지 부른 블랙리스트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또 하나 있다. 윤 당선인의 공약에 ‘노벨 문학상 수상을 위한 체계적 지원’이 있다. 그야말로 ‘쌍팔년도식 정책’이라 할 만하다.

문화예술 강국을 얘기할 때면 흔히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중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을 언급한다. ‘높은 문화의 힘’은 다양성은 살아 있되 문화격차는 없는 데서 생성된다고 믿는다. 새 정부가 문화 강국을 원한다면 ‘높은 문화의 힘’에 담긴 김구 선생의 혜안을 살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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