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시작, 출발, 처음. 늘 설레는 장면이다. 그 앞에 서 있는 이들의 활기는 그야말로 생생하다. 더군다나 수천만의 유권자가 참여하여 출발할 이를 정하고, 언론과 시민이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집중하는 상황이라면, 방향과 무관하게 정말 잘해보고 싶은, 잘해내야겠다는 다짐으로 충만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말과 행동과 선택이 한 시기의 1호로 기억되고 기록된다는 점에서는 책임과 부담이 적지 않겠지만, 두 마음을 비교한다면 역시 신나는 쪽이 확연하게 앞서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각별히 주의하며 발을 내디뎌야 하겠지만 말이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이와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뜻을 세우고 펴낼 이야기를 택한다는 점에서 출판사가 첫 책을 펴내는 마음을 떠올려본다. 계획하고 있던 여러 이야기 가운데 진행이 가장 빨라 첫 책이 되었다는 우스갯소리에도 진실은 있겠지만, 대개 출판사 전체의 지향과 색깔을 담아내려 공들여 고르고 골랐을 결과이니, 하나의 세계가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일 못지않은 무게가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인지 서점에서 일할 때 출판사의 첫 책은 무조건 응원하게 되었고, 지금도 2000년 이후 첫 책이 인상적이었던 출판사, 첫 책의 방향을 이어가는 출판사 목록을 갖고 있다.

목록을 열어보지 않아도 번뜩 떠오르는 이야기는 이김출판사의 첫 책 <필리버스터>이다. 필리버스터는 의회에서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합법적으로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는 무제한 토론을 뜻하는 일반명사이지만, 한국에서는 2016년 테러방지법안 반대 필리버스터를 바로 떠올릴 정도로 당시의 상황과 직결되어 고유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6년 전, 2016년 2월23일부터 3월2일까지 9일에 걸쳐 이어진 필리버스터는 큰 관심을 모았는데, 국회 공식 발언이라 속기록으로 자료가 정리되는 데다 해당 기록은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에 책으로 펴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농반진반처럼 출판계에 오르내렸다. 당시 아직 첫 책을 내지도 않은, 출판사 대표 두 사람의 성을 따 이김출판사가 되었다는 곳에서 1300쪽이 넘는 과감한 도전을 했고, 예약 판매를 진행한 첫날 1000부가 넘게 팔리면서 출판사의 출발을 확실하게 알렸으니, 기록할 만한 첫 책의 사례라 하겠다.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는 1인 출판사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유유출판사가 떠오른다. 2012년에 나온 첫 책 <단단한 공부>는 날렵하고 간결한 출판사의 성향을 책의 판형과 장정에도 그대로 반영하였는데, 초반에는 호평과 혹평을 오가며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으나, 일관된 디자인과 물성을 이어가며 이제는 유유만의 스타일로 평가받는다. 출판사는 이후 <공부하는 삶> <공부책> <평생공부 가이드> <공부해서 남 주다> 등 ‘공부’의 방법과 실천을 아우르는 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특정 분야나 주제에 집중하여 브랜드의 인지와 가치를 높이는 사례로 회자되기도 하니, 그야말로 내용과 형식을 동시에 성취한 첫 책의 사례라 하겠다.

나에게는 출판사의 첫 책이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시민 다수에게는 다음 정부의 첫 이야기가 훨씬 큰 관심사일 터, 마침 당선인이 소속된 정당에서 대선 후 첫 법안으로 재건축 안전진단을 완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하니,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할 참조점이 되겠다. 짐작건대 당분간 매일 어떤 1호가 등장하고 전해질 테니, 당사자가 아닌 유권자와 시민의 입장에서 신나는 마음보다는 들뜨지 않은 차분하고 진지한 태도로 살펴야겠다. 물론 응원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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