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한국은 학업성취 수준이 높은 국가 중에서 드물게 사교육 참여가 높은 국가로 기록된다. 사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있고 순기능도 있으나, 과도한 사교육 참여와 비용 지출은 국가적인 문제로 인식된다. 사교육비 부담은 출생률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빚을 내고 공부시키느라 경제적 빈곤을 겪는 ‘에듀푸어(edu-poor)’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지 오래다.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주 2021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예상과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사교육 참여와 사교육비의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2021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23조4000억원, 사교육 참여율은 75.5%, 주당 참여시간은 6.7시간으로 전년 대비 각각 21.0%, 8.4%포인트, 1.5시간 증가하였다. 전체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6만7000원, 참여학생은 48만5000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1.5%, 8.0%포인트 증가했다. 사교육비 조사 결과가 발표된 2008년 이후 모든 지표에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코로나19 지속과 오락가락하는 입시제도가 직격탄이 되었다. 코로나19가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출석 수업이 줄고, 출석과 재택 수업이 계획적으로 통제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블렌디드 러닝도 정착되지 못했다. 대입에서 정시 10% 확대가 반영되자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와 수능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가져왔다. 사교육비 조사 대상에서 벗어나지만 대입 재수생의 증가와 사교육비 확대는 곧 현실화될 것이다.

예상대로 가구의 월평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성적이 상위일수록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이 높았다. 경제적 여건에 따른 사교육의 차이는 시대적 화두인 ‘공정’의 적신호다. 성적이 높은데도 사교육 참여를 선택하는 것은 대학 진학을 향한 ‘경쟁적 동기’가 크게 작용하며, 전통적인 특징이다. 주목할 점은 초등학교에서 사교육 참여 학생 수와 참여시간이 가장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부족한 학습을 보충하기 위한 ‘보완적 동기’로 설명되지만, 기본적인 학습의 결손을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사교육을 공교육이 존재하기에 나타나는 ‘그림자교육(shadow education)’이라고도 하지만, 사교육 증가의 원인을 공교육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학력주의 가치관과 경쟁적 입시제도는 가장 중요한 환경적 요인으로 꼽힌다. 명문대 진학만이 사회적 성공을 보장한다는 가치관은 예전에 비해 퇴색되어 가지만 여전히 견고하게 남아 있고 입시와 연결된다. 그러나 과거 학벌 중심에서 직무와 역량 중심으로 기업의 채용 방식이 변화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학교교육을 통한 돌파구는 없을까. 2000년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 결정으로 과외가 전면 허용됨에 따라, 사교육 근절 내지 규제로 접근하던 대책은 ‘과도한 사교육비 경감’으로 전환되었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은 공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사교육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키는 ‘공교육 내실화형’, 공교육 체제 안에서 사교육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교육 제공형’으로 추진되었다. 전자는 공교육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선행교육 금지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방과후교육, EBS 수능강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정책들의 효과는 사교육 현상의 복합적인 원인들과 조사 방식에 따라 엇갈리지만, 이번 조사결과로 볼 때 효과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혼란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였고, 작년 말에야 시작된 교육회복 조치는 늦은 감이 있다.

불안감과 경쟁 심리로 모두를 사교육에 뛰어들게 만드는 고통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사회에 나가서도 4지선다형 문제와 정답이 있는 문제만 풀고, 학교에서 배웠던 것만 평생 써먹을 리 없다. 능력보다 학벌을 우선하여 채용하는 어리석은 기업은 없다. 개인과 사회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대입 한 방’으로 끝나는 승자를 위한 학습에서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모두를 위한 학습이 되도록 관련되는 사회 전반의 정책과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교육의 변화 또한 중요하다. 일정 연령의 학생들을 수용하고 정해진 진도를 나가며 수업일수를 채우면 내보냈던 것이 산업화시대 학교의 역할이었다면, 이제 높아진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킬 때다.

상당한 재정과 우수한 교사가 확보된 학교에서 모든 학생의 개인화 학습(personalized learning)이 가능하도록 도울 방법은 무엇인가? 앞으로 5년, 교육정책이 미래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과거의 프레임으로 회귀할지 지켜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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