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부터 동결하라읽음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내가 사는 동네의 전세 시세를 보면 이중가격이 확연하다. 대략 2억~4억원대 보증금에서 1억원 이상의 가격 차이가 눈에 띈다. 계약갱신권을 가진 세입자는 기존 가격 수준에서, 새로 계약한 세입자는 이보다 많은 보증금을 냈다는 의미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들어가 보니 이중가격 격차가 수억원에 달하는 곳도 많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올해 8월이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계약갱신권이 시행된 지 2년이다. 지난번에 계약갱신권을 사용한 세입자는 이번에 신규 계약을 해야 하므로 자기 동네에서 계속 살려면 추가 전세금을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성실하게 지난 2년을 살았을 뿐인데도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집없는 세입자, 무주택자가 당하는 날벼락이자 설움이다.

1가구 1주택자는 상황이 다르다.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집값이 급등하여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7.2%나 올랐다. 사실상 집값 상승에 따른 결과이다. 1주택 소유자이므로 투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연이어 자산 증가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늘어난 자산만큼 보유세를 내야하건만 세 부담은 그대로일 듯하다.

지난주 문재인 정부는 올해 공시가격이 인상되었지만 1가구 1주택자의 세 부담은 전년 수준으로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제안한 공약을 이어받은 정책이다. 이러면 공시가격이 5억원에서 6억원으로 올라 자산이 1억원 이상 늘었어도 보유세는 작년과 동일하게 약 73만원이다. 고가 주택도 1주택자면 같은 혜택을 받는다. 공시가격 15억원 아파트가 올해 17억원으로, 30억원 집이 35억원으로 올랐어도 보유세는 거의 인상되지 않는다. 작년에 1가구 1주택자에게 종합부동산세 적용을 완화하고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높여준 데 이어 또 하나의 선물이 등장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 공시가격 동결이 ‘1가구 1주택 실수요자의 부담을 막고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한 특단의 조치’라고 설명한다. 아마도 정부 정책 실패로 발생한 부동산 가격 급등이 죄송하고 이로 인해 1주택 소유자의 부담이 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참 착한 정부이다. 그런데 이렇게 따뜻한 마음이 왜 세입자에게는 향하지 않는 걸까? 1주택자든 무주택자든 모두 선량한 시민들이지만 처지는 완전히 다르다. 자산 보너스를 얻은 1가구 1주택자에게는 세 부담까지 챙겨주면서 전·월세 급등으로 가슴이 타들어가는 세입자들의 고통은 외면하는 대한민국 주류 정치가 정말 야속하다.

상식을 가진 정부라면, 집소유자에게는 자산 증가분만큼 세금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조세정의이고 부동산 가격 안정화의 길이다. 또한 주택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상황에서 가계 부담이 늘지 않도록 무언가를 동결하려면 가장 긴급한 건 세입자의 전·월세 동결이다. 집값 폭등을 초래한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최대 피해자는 집없는 세입자들이지 않은가. 당해연도 소득과 자산에 매기는 게 세금이건만 세법까지 개정해 과표가격을 작년으로 되돌리는 결기라면 못할 일이 없다. 당장 신규 계약에도 계약갱신권을 적용하도록 법을 개정하라. 코로나19 상황에서 세입자들의 가계 부담을 감안하여 전·월세 상한 5%도 올해는 동결하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하라. 1가구 1주택자를 위한 보유세 동결처럼 말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더 심각하다. 공시가격을 2년 전으로 환원하고 종합부동산세도 폐지하며 1주택자의 취득세도 완화한다. 심지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임대차 3법을 폐지·축소하여 기존 계약갱신권까지 무력화할 태세이다. 2년 전 법개정 당시 전세난으로 주거안정성이 훼손되었다는 것이 이유인데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전세 이중가격은 역설적으로 많은 세입자들이 계약갱신권 덕분에 보증금 추가 부담을 피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전세가격이 오른 것은 직전 기간에 금리가 인하되어 유동성이 늘어난 게 핵심 이유였고, 설령 임대차 3법의 영향을 따지더라도 계약갱신권이 행사되면서 전세 물량이 줄어드는 제도 시행 첫해의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임대차 3법은 축소하거나 폐지할 제도가 아니라 모든 전·월세에 계약갱신권이 부여되도록 강화되어야 한다.

아무래도 다가오는 8월이 심상치 않다. 집없는 사람이 국민의 거의 절반이다. 두 거대정당은 치솟은 전세가격을 감당하기 위해 수억원을 빚내거나 외곽으로 이삿짐을 싸야 하는 세입자들의 좌절과 분노를 알아야 한다. 1가구 1주택자의 세 부담을 걱정하기 전에 우선 무주택자의 전·월세부터 동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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