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0일, 아마도 손님의 휴대폰 화면 속에서는 열심히 달려가던 귀여운 배달 라이더 캐릭터가 갑자기 멈췄을 거다. 손님이 배달을 시키고 실시간으로 배달 라이더를 확인했다면, 배달노동자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쿠팡이츠에 항의 전화를 했을 수도 있다. 회사에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은 라이더는 트럭에 치여 도로 위에서 사망했다. 화면 속 배달노동자는 영정으로 장례식장 단상에 놓여 있었다. 그제야 배달노동자의 이야기가 하나둘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이 둘을 홀로 키우기 위해 하루 8만보씩 배달을 하다 그게 너무 힘들어 전기 자전거로 배달을 시작했다. 이름도 이야기도 없이 죽은 배달노동자들은 더 많다.
배달산업은 노동자의 생명을 먹으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도로는 전쟁터로 변했다. 전사자는 장례식장으로 살아남은 자는 ‘딸배’가 된다. 죽음조차 존중받지 못해, 배달노동자의 이야기는 ‘감성팔이’라는 모욕을 당한다. 장례식장 쌀밥과 댓글 속 욕을 반복해서 먹다보면 반박할 기력조차 사라진다. 그렇게 죽음이 익숙해져버린 내게 한 배달노동자가 죽비를 내리쳤다. 4월1일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규탄 기자회견에서 자전거 배달을 하는 조합원이 외쳤다. ‘사람이 죽은 날에 쿠팡이츠는 5건 하면 추가 보너스를 주겠다는 알림과 문자를 보냈다. 적어도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이 죽으면 조의를 표하는 게 예의 아니냐!’ 정신이 번쩍 들었다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배달 앱의 알림에 아무런 분노도 슬픔도 느끼지 못했다. 사람 하나 죽었다고 배달산업이 멈출 리 없다. 다른 사람이 배달하면 그만이다. 죽은 이는 데이터에서 삭제될 뿐이다. 배달노동자의 사고와 죽음을 막는 건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면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구멍이 뻥뻥 뚫린 채 방치되고 있다.
산재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한 배달노동자 박재범씨는 배달 일을 하다가 사고가 났는데도 산재보상을 받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은 하나의 앱에서 월 93시간, 115만원의 소득을 벌지 못하면 전속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보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전속성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이 황당한 단어는 정부와 국회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2020년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속성 기준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지난해 민주당은 전속성 폐지를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하였지만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약속은 하지만 지키지는 않는 사이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은 박재범씨는 1000만원의 치료비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 3월30일 사망한 배달노동자는 전속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산재보상이 어려워졌다.
남은 가족들은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에 동료들이 함께 있으면 좋겠다며 배달복장으로 운구를 부탁했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은 상복 대신 배달조끼를 입고 그의 마지막 동료가 되었다.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우리에게도 동료가 필요하다. 일하다 다치면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산재법상 노동자 개념을 노무제공자로 확대해야 한다. 안전하게 배달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라이더보호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장례를 마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슬픔과 추모를 넘어 제도개선을 위한 연대와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