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기어코 ‘여성’을 지우겠다는 건가

김민아 논설실장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내정자가 11일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내정자가 11일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언해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하 윤석열)이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명했다. 내정된 김현숙 전 의원은 주로 출생률 제고 관련 정책을 연구해온 경제학자다. 윤석열은 지난 10일 인선을 발표하며 “선거 과정에서 영유아 보육과 초등돌봄 등 사각지대 없는 수요 맞춤형 육아지원정책을 포함한 가족정책을 설계해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인구대책과 가족정책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숙도 소감문에서 “인구, 가족, 아동 문제를 챙기며 젠더갈등과 청년세대의 어려움을 풀어나갈 수 있는 부처의 역할을 정립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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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그런데 윤석열의 설명이나 김현숙의 소감에 ‘여성’이란 단어는 (부처 명칭 외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구’와 ‘가족’이 반복된다. 공약대로 여가부를 폐지하든, 명칭을 바꿔 존치하든, 주체적 개인·시민으로서의 ‘여성’을 지우고, 출산·양육·돌봄 담당자로서의 여성만 호명하겠다는 선언이다.

이 사태의 시발점은 모두가 안다. 지난 1월7일 윤석열이 페이스북에 올린 일곱 글자 ‘여성가족부 폐지’다. 연말연초 지지율 급락으로 위기에 몰렸던 윤석열은 1월6일 이준석 대표와 극적으로 화해한다. 그 화해(라 쓰고 ‘거래’라 읽는다)의 대가가 ‘일곱 글자’였다. 원래 윤석열의 여가부 공약은 폐지가 아니라 양성평등가족부 개편이었다. 그러나 일부 안티 페미니스트 남성을 등에 업은 이준석의 어젠다를 수용한 윤석열은 여가부 폐지로 돌아선다. ‘안티 페미 남’은 곧바로 호응한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던가. 여가부 폐지로 흥한 자, 여가부 폐지로 망할 뻔했다. 노골적 반여성 행보에 실존적 공포를 느낀 2030 여성은 대선 막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쪽으로 결집한다. 청년여성뿐이 아니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 여성이 이재명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0.73%포인트라는 ‘깻잎 한 장 표차’는 이렇게 나왔다.

대선 이후 윤석열은 아직 정권교체가 완료되지 않았다며 지방선거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윤석열의 국정 수행 기대치(지지율)는 역대 당선인보다 낮다. 공약에도 없던 ‘대통령실 용산 이전’(공약은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이전’)으로 허니문 시기를 날려버린 탓이다. 10대 공약에도 포함시켰던 여가부 폐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철회하면 안티 페미 표가 우수수 날아가고, 밀어붙였다가는 여성들에게 미운털이 박힐 텐데….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모두 브레인스토밍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런 대화가 오갔을 법하다.

“아이디어 좀 내봐! 여성 표 가져오고 안티 페미 표도 잃지 않을 묘수를!” “여가부 문제만 피해갈 순 없고…. 정부조직 개편 자체를 새 정부 출범 후로 미룬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거 괜찮은데…. 명분은 뭘로 하지?” “민생과 안보를 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지난 7일 정부조직 개편을 미루겠다고 발표하며 “국내외 경제 문제, 외교안보 상황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여가부 장관도 임명될 것이라며 “임명된 장관은 좀 더 나은 개편 방안이 있는지 계획을 수립할 임무를 띤다”고 설명했다. 인수위는 “여가부 폐지 공약은 유효하다”(추경호 기획조정분과 간사)며 일부 지지층을 달래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폐지파는 시기만 미룬 것으로, 존치파는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정신승리’를 유도하자는 계산일 터다. 이런 꼼수에 주권자가 속아 넘어갈 거라 믿으면 오산이다. 지뢰처리반이나 폭탄해체반도 아니고 부처 폐지 담당 장관이라니. 이런 장관을 임명하는 건 부처와 공무원, 사업 대상이 되는 시민까지 모독하는 일이다. 국민의힘은 여가부 폐지 공약이 유효하다면, 그 내용을 반영한 정부조직법 개정을 당장 추진하라. 이를 전제로 지방선거에서 심판받아라. 그럴 자신이 없으면 공약을 철회하는 편이 정직하다.

김현숙 인사청문회 때 민주당 의원들은 이것부터 물어야 한다. “부처 폐지를 전제로 지명을 수락했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민주당 청문위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옳다. 인사청문회는 장관 후보자가 해당 부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정책의 초점은 어디에 맞출지 묻는 자리다. 집을 새로 짓거나 구조를 보강할 계획을 조목조목 따져야 하는데, 집을 허물고 청소하러 들어간다는 이에게 뭘 따질 텐가. 국회가 부처 없애겠다며 장관 된 사람까지 검증할 이유는 없다. 당신들이 가진 172석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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