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태어날지 모르고 태어난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 든 패가 ‘꽃놀이패’일 수도, ‘개패’일 수도 있다. 사회계약론의 기본 아이디어다. 내가 어떤 위치에서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면, 어디에서 시작해도 불리하지 않은 사회가 좋은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공정을 원한다. 문제는 이미 불공정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다.
우선 내가 경험하는 불공정을 모두가 말해 보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남들이 뭘 경험하고 사는지를 알아야 무엇이 특권이고 차별인지 알 수 있다. 온통 ‘나’뿐인 진공관의 세계 안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옳은 주장을 할 수도 없다.
지난 13일 JTBC <썰전>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출연해 토론 아닌 토론을 했다. 이준석은 당사자성이 다가 아니고 모든 장애인이 이동권과 탈시설 이슈에 같은 의견을 가진 게 아니라며 박경석을 몰아붙였다. 이준석은 공정을 다뤄야 할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한 말하기를 했다.
이 사안에 대해 논하려면 박경석의 주장은 박경석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짚어야 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돈반과 캐런 주커가 함께 쓴 책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자폐증 ‘환자’로 취급되던 이들이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었는지 864쪽 분량으로 풀어낸다.
이야기의 시작은 1930년대 캐나다에서 다섯 쌍둥이가 ‘전시장’에 전시됐던 시점이다. 당시는 일란성 다섯 쌍둥이가 죽지 않고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주 정부의 수익 사업에 동원되어 낮 시간이면 방문객들을 맞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병원’에서 생활했다. 요즘의 시설 생활이다. 당시 기준으로 이 쌍둥이들을 구경한 관광객들은 이게 아동학대나 인권침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감각은 자폐 아동을 ‘결핵요양병원’ 같은 데 보내고, 그 아이를 잊고 다른 ‘멀쩡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게 자연스러웠던 감각과도 연결돼 있었다. 지금 자폐 아동이 ‘시설’에 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조건은 모든 자폐 당사자와 그 가족이 동의하는 순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다들 그러고 있는 현실에 의문을 던지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남들을 적극 찾아 나선 사람들로부터 이루어졌다. 그런 이들의 노력이 모여 사회는 급속히 변화의 물결을 경험했다.
책 바깥의 이야기도 하고 싶다. 출판사 ‘꿈꿀 자유’의 강병철 대표는 소아과 의사인데, 가족의 정신질환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출판을 시작했다.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는 돈이 되기는 어려운 책이다. 그러나 한국에 이런 논의가 필요하다 여긴 이들이 조금씩 펀딩을 해 출간됐다. 나 역시 비당사자이고 개인적으로 역자를 모르지만, 같은 마음으로 후원했다. 당사자성이 다가 아닌 운동적인 논의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그 일원인가? 이런 토론 아닌 토론 자리를 만들어버린 방송 기획자와 진행자는? 말의 진의는 맥락 속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