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의 책상물림] 거꾸로 선 세상

유몽인이 수경당(水鏡堂)을 제재로 누정기를 썼다. 거울처럼 맑은 물을 뜻하는 수경은 매우 맑고 깨끗한 인품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이를 통해 수경당의 주인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을 법도 한데, 유몽인은 그저 풍경 묘사만으로 작품 전체를 채웠다. 한강에 배 띄우고 앉아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흥겹게 놀다 보니 취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꿈속처럼 펼쳐진다고 하면서, 그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양편 언덕이 거꾸로 걸려 있고 산봉우리가 아래를 향했다. 사람도 소와 말도 모두 물구나무서서 걸어가며, 새는 배를 위로 젖히고 날아간다. 정자 하나가 있는데 섬돌이 위에, 기와지붕은 아래에 있으며, 현판의 글씨 역시 뒤집혀 있다. 그런데 가벼운 바람이 문득 불어오자 풍경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사라져 버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유몽인의 눈에 제자리를 되찾은 만물이 펼쳐졌는데, 거기 수경당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가 있었다. “뱃사공에게 물어보니 이대엽의 정자라고 한다.” 묘사 뒤에 이 한마디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작품을 끝맺었다.

이대엽은 광해군 때 대북파를 이끌던 이이첨의 아들이다. 인목대비를 폐위시키자는 대북파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은 탓에 유몽인은 목숨만 겨우 건지고 관직에서 쫓겨났다. 작품 전체를 채운 허경의 묘사는, 바람만 살짝 불어도 흩어져 버리고 말 이이첨 집안의 권세를 빗댄 셈이다. 은근한 풍유로 날선 비판을 감싸 두었다.

이이첨과 이대엽은 몇 년 뒤에 인조반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거꾸로 선 화려한 세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몽인 역시 인조반정의 주역들에 의해 처형당했다. 유몽인은 자신의 마음에 옳은 대로 따를 뿐, 특정한 당파에 속해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맡기지 않았다. 철저히 혼자라고 선언하고 어떤 당파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고 누구라도 비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유로움마저 용납되지 못했던 것이 당시의 정치 현실이었다. 그저 400년 전, 당쟁이 극심할 때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패거리 지어 비방과 단죄를 일삼는 사이버공간, 그 거꾸로 선 세상을 보며 던지게 되는 씁쓸한 질문이다.


Today`s HOT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400여년 역사 옛 덴마크 증권거래소 화재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장학금 요구 시위하는 파라과이 학생들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2024 파리 올림픽 D-100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