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과 트랜스젠더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미류, 이종걸 두 활동가가 차별금지법 4월 내 제정을 목표로 밥을 굶으며 ‘투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벌써 5월 중순이다. 여론 지형을 살필 때 구글 알고리즘이 어떤 정보를 상단에 띄워 주는지를 본다. ‘차별금지법’을 검색하니 취지는 이해하지만 다른 의견도 들으며 가야 한다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칼럼이 상단에 있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맞다. 유별나게 ‘성소수자 반대’를 외치며 부채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나는 ‘보통 사람’이라, 차이가 있는 사람들과 여러모로 접점을 만들고서야 내가 편협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 많았다. 다른 생각이 궁금한 누군가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차별금지법이 트랜스젠더를 보호하면 여성의 안전과 성취를 위협하게 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반대로 접근해야 한다. 성역할이란 시대마다 문화권마다 다르고 애매모호한 것인 만큼, 트랜스젠더는 그 구조 위에 자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 동네에 트랜스젠더는 몇 명이나 살까? 공식적으로 알 수 없다. SBS 이슈취재팀이 작년 5월 지자체 정보공개청구로 만든 추정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트랜스젠더 수는 약 6000명이다. 그중 65%가 서울에 산다니 대략 2500명 중 한 명, 내가 사는 동의 인구수를 보면 10명 내외의 트랜스젠더가 우리 동네에 산다.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지만, 이들은 존재한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흔한 곡해는 이런 것이다. 남자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여자라고 ‘선언’하는 게 트랜스젠더란 것이다. 그러나 성차별적 사회 구조 속에 내가 원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건 어떤가? 페미니즘 인식론을 알고 부모, 선생, 직장 상사에게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라고 선언하면 가능했나? 내 자신의 머릿속에서조차 내가 원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로드맵이 그냥 펼쳐지는 일은 없었다. 어딘가에서 떠나고, 어딘가에선 받아들여지며 관계망을 다시 짰다. 이걸 내 용기와 객기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여성운동을 바탕으로 언론과 제도, 법 영역에서 성차별이 문제시되어 온 토대 위에 일어난 일이었다.

트랜지션이 상호작용이란 건 경험을 통해서도 알게 됐다. 트랜스젠더 ‘선언’ 후를 살아가는 데 무지하기는 당사자인 식구나, 그 옆의 나나 마찬가지였다. 페미니즘이 내 삶을 뒤집어놓았듯 트랜지션은 내 식구의 삶을 뒤집어놓았고, 격동을 받아들이는 건 개인뿐 아니라 관계망의 몫이었다. 연구와 활동의 결과물들을 참조하며 상호작용해, 나는 머릿속에 식구를 새롭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모듈’을 만들었다. 우리들은 모두 처음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 비슷한 과정이 영화 <너에게 가는 길>에서도 그려진다. 차별금지법의 입법과 시행 과정에 참조되는 연구활동의 결과물, 논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담론, 가시화되는 사례들은 트랜스젠더와 주변인 간의 조율과 공존을 도와줄 것이다. 세부적인 것은 차금법 이외의 틀로도 논의될 수 있다. 트랜스젠더의 어떤 언행에 성적 불쾌감을 느낀다면? 성폭력은 형법에서 처벌되는 문제다. 스포츠대회 순위에 영향을 준다면? 트랜스젠더의 출전이 허용된 영역에서 공정성 확보는 논의 과정에 있다. 사람과 사회는 상호작용을 통해 변해간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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