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 탈석탄’을 염원하는 생명·평화 순례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5년 만에 ‘탈원전’에서 ‘원전 확대’로 핵발전 정책이 180도 변했다. 전력의 안정적·경제적인 수급과 기후위기 대응이 주된 명분이다. 그러나 정권과 정책이 변한다고 진실마저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핵발전은 정권에 상관없이 언제나 위험하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지금도 여전히 보여주는 비극적 진실이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안전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핵발전은 ‘통합’이 너무 당연한 것이라 취임사에서 뺐다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핵발전은 불평등과 차별을 키우는 갈등과 분열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하면 나올 수밖에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인 고준위핵폐기물의 ‘영구처분장’을 원할 지역은 이 땅 어디에도 없다. 정부는 30년 넘게 후보지를 물색해왔지만, 모두 실패했다. ‘화장실 없는 집’, 핵발전소가 딱 그 꼴이다.

그동안 아무 대책도 없이, 아무 문제도 없는 듯 핵발전을 해오다 임시저장소가 거의 차니까 이제 발전소 안에 저장 시설을 만들자고 한다. 발전소 안에 영구처분장을 짓자는 것과 같다. 다른 지역으로 보낼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로 수십 년간 각종 피해를 감수해온 지역 주민에게 이제 그 쓰레기까지 ‘영구히’ 떠넘기려는 처사는 불평등과 차별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수십 년씩 탄가루 속에서 살아온 석탄화력발전소 지역 주민도, 평화로운 마을이 난데없이 쑥대밭이 돼버린 송전탑 지역 주민도 마찬가지다.

온실가스 감축은 의식전환에 답

그래도 핵발전을 확대하겠다면, 이제는 수익자와 오염자 부담 원칙에 따라 전기를 쓸 곳에 발전소와 영구처분장을 지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이고 상식이다. 이제는 일반쓰레기도 배출한 지역에서 처리하는 것이 대세이니 핵쓰레기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자기 지역은 안 된다면서도 전기는 필요하다며 다른 지역, 특히 핵발전소가 이미 들어선 지역에 발전의 부담을 떠넘기는 것에 우리는 무관심하거나 관대하다. 그러니 소형모듈원전(SMR)은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는 충남 지역에 짓자는 말이 대수롭지 않게 나온다. 한 나라 안에서 노골적 폭력을 앞세운 이런 제국주의적 태도가 횡행할 때 공정과 상식, 통합이 설 자리는 없다.

핵발전이 기후위기 대응책이 될 수 있을까? 핵발전소의 건설과 폐로는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과정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길게 잡아도 앞으로 10년이 결정적인데, 핵발전소는 부지 선정에서 가동까지 10년 이상 걸린다. 신한울 3·4호기도 절차를 지킨다면 2030년 가동도 힘들다.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도 주민 의견 수렴 등 절차를 제대로 지킨다면 결코 쉽지 않다. 절차의 간소화로 기간을 단축하면 ‘안전’ 문제가 불거진다. 한편 2019년 우리나라 에너지 소비 현황을 보면 전력은 전체 에너지 소비의 20%에 불과하다. 모든 전력을 핵발전으로 생산해도 온실가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핵발전 확대는 결국 핵산업계,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다.

탈핵을 말하면 바로 대안이 있느냐는 힐난성 질문이 돌아온다. 그러나 무엇을 반대할 때 꼭 대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핵발전같이 반생명적·반사회적·반생태적 거대기술은 ‘그냥’ 거부하는 것이 맞다. 그래도 대안을 내놓으라면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 대체로 에너지는 계속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해결할 문제로 꼽는다. 그런데 갈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지금의 낭비적 체제와 이를 당연시하는 집단의식은 문제가 없을까? 진짜 문제는 충분함의 감각을 잃어버린 성장 중독, 성장이라면 불평등과 차별도 서슴지 않는 폭력적 의식이다. 온실가스 감축의 답은 핵기술이 아니라 체제와 의식의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

무조건 모두가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기본적 삶의 필요를 위해 물질과 에너지가 더 필요한 지역과 사람이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수도권이 전체 에너지의 36%, 서울과 세종을 포함한 8개 특별·광역시가 44.8%를 썼다. 기후위기의 책임은 차등적이다. 정부는 책임이 큰 곳이 에너지를 덜 쓰고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도 생명·평화 발걸음이 되자

물론 기득권의 편익에 익숙한 ‘중앙’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변화는 일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리며 삶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절감하는 ‘변방’에서 온다. 월성 핵발전소 인접 주민들은 9년째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자기들의 삶을 담은 ‘상여’를 끈다. 핵발전소 계획을 세 번 물리쳤지만, 이제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 신음하는 삼척에서 지난 11일 한 수도자가 ‘탈핵, 탈석탄, 탈송전탑’을 염원하며 소비의 심장 서울로 순례를 시작했다. 이제 다른 삶을 짓밟고 얻는 풍요의 유혹 대신 생명과 평화의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자. 우리도 그 발걸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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