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자유를 원하신다면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대통령 취임 직후 취임사에 ‘자유’가 몇 번 언급되는지 회자되었다. 서른다섯 번을 읊는 중에서도 ‘평등’은 문장에 없다는 지적이 있지만, 설령 언급해도 겉치레라는 비판이 따랐을 것이다. 어쨌든 새 대통령은 자유를 실천 중이다. 첫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에는 격식에 구애받지 말 것을 제안했다. 주말에는 서울 시내에서 쇼핑하는 또 다른 파격을 보였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임기 초 소탈하고 자유로운 대통령 이미지를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하지만, 진정으로 자유를 추앙하려거든 ‘사장놀이’에 그치지 말고 격식 너머에 있는 불평등의 낡은 관성을 없애길 바란다. 성소수자건 이주민이건 정체성과 국적, 피부색에 상관없이 가족을 구성하고,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집회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라. 건물주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으며 거주할 수 있는 자유 또한 보장하라. 남들과 다른 외모와 태도를 가졌다고 회사와 학교에서 불이익을 가하고, 장애가 있다고 시설에 가두며 노동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계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에 불편을 주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지만 대통령의 일상을 위해 매일같이 거리를 막고 교통을 통제하는 것에 비할까. 경찰은 불편을 최소화한다고 하지만 누구를 위해 길을 막고 차량을 통제하는지 불 보듯 뻔하다. 근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이동권과 권리 보장 예산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을 막아 일상에 개입한 데 대해 여당 대표는 비문명적으로 불편을 끼친다고 비난했지만, 공존이 아닌 특정 집단의 편의를 위해 사회가 감내할 불편을 당연시하는 건 당신들의 자유가 함께 살기 위한 노력은커녕 특권의 다른 이름임을 증명할 뿐이다.

자유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이동하고 모이며 관계 맺을 권리를, 일상을 살아가며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전제해야 한다. 그렇게 두루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우리는 ‘평등’이라고 부른다. 평등 없이 자유만을 보장할 때 강조되는 건 결국 부당하게 남용하는 권력이고 위계일 터. 제대로 정치를 펼치겠다면 일방적인 자유를 행하기에 앞서 평등부터 실천하라는 말씀을 올린다. 다시 말하건대 지금 필요한 건 종교다문화비서관과 같은 해괴한 직함이 아니라 차별을 예방하고 평등의 가치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취임사 마지막 대목은 새 정부도 모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주어진 권력으로 제 안위만 지키려는 전철을 반복하지 마시길,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대야당에 평등의 가치로 경종을 울리시길. 이미 밥상은 차려졌다. 혼밥 싫어하는 거 다 아니까 자유는 그만 독식하고 함께 평등의 숟가락을 들자. 이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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