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에 대한 두려움읽음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종교와 정치의 선택은
자신들이 배제당하지 않으려
소수자를 배제당한 채로 버려둔다

차별금지법은 그 모습 그대로
지금 국회 앞에 버려져 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공포증을 두고 “무언가를 병적으로 무서워하는 증상은 불안이나 혐오와 비슷”하고, “그에 더해 특정 종류의 사람이나 동물, 물질, 상황에 대해 불쾌하고 심란하고 고약하고 야단스러운 감각적 반응”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은 이런 공포증에 걸린 사람들을 지배한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자기에게 두려움을 유발하는 특정 대상에 걱정을 집중시킨다. 그런데 바우만은 그렇게 특정한 대상이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는 피해를 낳는지는 명백하지 않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대상과 우리가 겪는 고통 사이에 인과관계조차 분명하지 않다. 때로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현실과 무관하기까지 하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공포증에 빠져드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바우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중심에는 급격히 요동치는 사회에서 “배제당하는 것, 쫓겨나는 것, 혼자 남는 것, 삭제당하거나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차단당하는 것, 뒤처지거나 떨어져 나오는 것, 승인이 거부되고 무시당하고 계속 기다려야 하고 불청객 취급을 받는 것”이 있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사람이 페이스북 친구 리스트에서 삭제당하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 이런 공포증을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라 간략히 부르기로 하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앞 단식농성이 한 달을 넘어섰다. 돌아보면 차별금지법만큼 정치인들에게 차별받아온 법이 없다. 2007년부터 시작해 수차례 발의된 법안들이 대부분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입법과정에서 좌절되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렇게 오랜 시간 외면당한 데에는 ‘성적지향’ 이슈가 있다. 더 정확하게는 성소수자의 권리 합법화에 대한 일부 교회의 반대에 있다. 반대자들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면 동성애 문화가 만연하게 되고, 신앙교육도 마음대로 못하여 교회지도자들이 신앙의 양심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산업사회가 극도로 경직되고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자유마저 훼손될 것이라고 말한다. 고용, 재화 및 용역의 공급과 이용, 교육, 행정 서비스 제공과 이용이란 오로지 4개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이런 거대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바우만이 지적하듯 명백하지 않다. 성소수자 권리의 합법화가 반대자들이 겪는 고통과의 직접적 인과관계조차도 분명하지 않다. 명확한 것이라면, 교회가 내세우는 신념의 배제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이런 성적지향 이슈를 둘러싼 배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정치인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난다. 낙선이 공포 그 자체나 다름없는 정치인들에게 선거 무렵이라면 더 그렇다. 2017년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놀랄 만한 일이었다. 2021년 정치에 뛰어들며 다가올 대선을 준비하고 있던 윤석열 현 대통령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심각한 사례’로 차별금지법을 들었다. 그런데 OECD 국가 중 차별금지법 혹은 평등법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2021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국민의당 후보로 나선 안철수 대표는 ‘성소수자의 퀴어 축제를 두고 싫어하고 거부할 권리가 있다’며 도심 밖에서 자기들끼리 개최하라고 주장했다. 성적지향과 관련해선 소위 제3지대도 없었다.

이런 정치인들의 발언이 자기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면, 교회세력의 지지가 없다면 낙선할 수도 있다는, 배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수년 전부터 우리 시민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다수가 찬성해왔다. 당장 지난 3일과 4일에 걸쳐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만 봐도 성적지향을 포함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57%가 찬성하는 반면, 반대는 29%에 그쳤다. 지난 4월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67.2%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제껏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란 공포증에서 비롯된 종교와 정치의 선택은 누구라도 차별받지 않을 자유 대신 선택적으로 누군가를 차별할 자유를 그대로 두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사회의 소수자들을 ‘배제당한 채로, 쫓겨난 채로, 혼자 남겨진 채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차단당한 채로, 마침내 승인이 거부되고 무시당하고 계속 기다려야 하는 불청객인 채’로 버려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지금 국회 앞에 버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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