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없는 자’만이 느낀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일정한 경제적·교육적·문화적 수준이 없이는 자유가 불가능하니, 자유가 유린된 이들을 돕기 위해 연대해야 함을 강조했다. 선거운동 당시 주 120시간 노동이라는 초현실적인 말을 뱉은 거에 비하면 약간은 균형을 잡으려고 한 것 같다. 다른 논란이었던 최저임금보다 더 최저로 임금을 받고도 일할 자유도, 취임사대로라면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찰의 결과물이라기보단, 중학생들이 ‘자유’라는 주제로 작문을 할 때 툭툭 던지는 추임새 수준이었다.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저자

개인의 자유가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자유가 없는 이들을 도와주자는 얼핏 아름다워 보이는 말은 그게 좋은 사회 아니냐는 의식구조로 이어지지만 ‘연대’를 시민의 의무가 아니라 약자를 향한 시혜적 시선 안에서 해석하게끔 하는 큰 문제를 지닌다. 그래서 ‘너희들이 누리는 자유를 내게도 달라’는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는 쉽사리 ‘내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비문명적 시위로 포장된다. 그 자유, 그러니까 지하철을 이용하여 제때 이동하는 일상이 출근시간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불평등을 전제로 만들어졌음은 한순간에 휘발된다. 보편적 자유를 위해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괴상한 사회는 그렇게 흘러간다.

자유는 ‘없는 자’만이 느낀다. 비장애인 누구도 ‘나는 지하철을 탈 자유를 누렸어’라면서 감탄하지 않는다.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누릴 뿐이다. 태어난 성별대로 정체성 고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용변을 볼 자유를 누려서 행복하다’고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은 고작 화장실을 이용하면서도 다른 이의 눈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다.

집회와 시위를 할 자유를 헌법이 보장하는 건 그게 자유가 유린된 이들을 발견하는 사회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는 자유를 향한 원초적인 몸부림에 대해 자유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늘 환영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실천하는 이들은 시끄럽다,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떼만 쓰면 다 되는 줄 안다 등등의 수식어를 덕지덕지 붙이고 살아가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자유만 뱉으며 실제 그 자유의 결핍을 상징하는 불평등에 대해서는 둔감한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자유라는 말이 빈번하면, 오용된다. 노키즈존을 운영할 자유, 난민을 배제할 자유, 특수학교를 반대할 자유, 임대아파트 주민을 무시할 자유, 부동산 투기할 자유, 제재 없이 기업 활동을 할 자유, 여성은 돌봄 노동에 적합하다고 여길 자유 등등은 자유가 오용된 대표적인 반지성주의 사례다.

최근 조현철 배우의 수상소감이 화제다. 그는 투병 중인 아버지를 위로하면서 죽음의 사회적 가치를 불평등하고 편견이 얼룩진 세상의 피해자인 박길래, 변희수, 김용균, 이경택 등의 이름으로 조명했다. 자유는 이들의 ‘자유롭지 못했음’을 설명할 때 등장해야 한다. 어쩌다가 저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었는지를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라는 가치의 재발견 아니겠는가. 지금 한 노동자가 50여일을 단식하고 있다. 요구사항 중 하나는 놀랍게도 점심시간 1시간 보장이다. 이걸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 ‘자유’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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