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가 못하나

김진우 정치부장

“잘하기 경쟁을 통해 누가 국민에게 더 충성하는지를 겨뤄야 합니다.”

3·9 대선 패배 후 두 달 만에 전격 등판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지난 11일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한 말이다. 이 상임고문은 지난 10일 대선 경쟁자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맞아서도 “야당으로서 협력할 것은 확실히 협력하고, 견제할 것은 제대로 견제하며 ‘잘하기 경쟁’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김진우 정치부장

김진우 정치부장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대선 이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금까지 여야 정치권은 ‘못하기 경쟁’을 반복하고 있다. 자신들의 말을 스스로 배반하고, 오기와 독선으로 밀어붙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충수를 두고 있다. ‘잘하기 경쟁’은 언감생심.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남은 지난 대선을 반면교사로 삼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부터 그렇다. 그는 당선인 시절 최우선 과제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들고 나왔다.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이전 장소를 바꾸더니 여론 수렴 없이 밀어붙였다. 새 정부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내각·대통령실 인선은 우려스럽다. 검찰 최측근인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에 지명하더니 그의 자녀 스펙쌓기 등 부적격 논란에도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대통령실 주요 비서관급 이상 보직에 이어 법제처장·보훈처장에 검찰 출신 측근들을 줄줄이 기용했다. 국가정보원 인사·예산을 담당하는 기조실장에도 검찰 출신 측근이 내정됐다고 하니, “검찰공화국 완성”이라는 야권 비판에는 뭐라 할 건지 궁금하다.

‘아빠 찬스’ 논란의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풀브라이트 장학금 논란 등으로 낙마한 김인철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 위안부·동성애 망언 논란에 사퇴한 김성회 다문화종교비서관, 성비위 의혹에 휩싸인 윤재순 총무비서관 등 검증을 하긴 했는지 의심 가는 인물들도 수두룩하다. 검찰 흑역사로 기록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수사·기소 검사였던 이시원을 공직기강비서관에 발탁한 데선 말문이 막힌다. ‘내로남불’은 이럴 때 쓰라고 하는 말인가. 시민들은 윤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통합과 협치의 리더십도 보기 힘들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지방을 돌면서 가는 곳마다 국민의힘 단체장 후보자들과 동행해 선거개입 의혹을 샀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을 어루만지며 ‘같이 갑시다’라고 할 시기에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면서 약을 올렸다.”(문희상 전 국회의장) 취임사에서 ‘자유’란 단어를 35번이나 쓰면서 ‘통합’은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그 취임사에서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다”라고 했다. 역대 최소인 0.73%포인트 차 대선 승리는 민심의 ‘예비 경고’였지만, 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민주당도 이에 못지않다. 지난 대선은 민주당 정권의 오만과 무능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러나 반성과 쇄신보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희한한 논리를 내세웠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꺼내들더니 꼼수 탈당과 회기 쪼개기 등 수적 우위를 앞세운 편법을 동원해 입법을 밀어붙였다. 대선 패배에 책임을 진다던 전 당대표는 연고가 없는 서울시장에 출마했고, 이 과정에서 계파갈등만 노출했다. 이재명 상임고문도 대선 패배를 숙고하는 시간을 두 달 만에 끝내고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86그룹(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3선인 박완주 의원의 성비위와 2차 가해 사건에 휩싸였다. 이번 사안은 ‘못하기 경쟁’에 안주해온 민주당, 더 나아가 기성 정치권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그간 성비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일단 비부터 피하고 보자는 식의 대응을 해왔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번 사건은 과연 민주당에 자정 능력이 있는지를 묻고 있다. 또 중년 남성 중심의 정치 문화가 지속 가능한 것인지 묻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는 박 의원 사건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윤재순 총무비서관의 성비위 의혹을 놓고 피장파장론으로 맞붙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야는 모두 ‘정치교체’를 외쳤다. 다시 이재명 상임고문의 말이다. “‘국민 삶과 동떨어진 구태정치, 정쟁정치를 중단하라’ ‘기득권의 잔치, 여의도 정치를 혁신하라’ 등 국민의 명령대로 하겠다.”(지난 1월26일) 정치권에 ‘국민의 명령’을 따르는 자가 과연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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