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는다, 집이란 무엇인가읽음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가끔 꿈에 집이 나온다.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고 뒤에는 논이 펼쳐진 층 낮은 아파트. 15년을 조금 안 되게 살았다. 떠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꿈만 꿨다 하면 그 집이다. 그 후로 3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다녔다. 다니던 학교가 멀어서, 가족이 서울에 살아야 해서, 그리고 계약이 끝나서. 지금 가족과 함께 사는 집도 1년 뒤면 계약이 끝난다. 점점 밀려나는 기분이다. 1년 뒤면 또다른 주소지를 갖게 되겠지.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조희원 참여연대 활동가

이사 기한이 가까워질수록 독립에 대한 욕구도 커진다. 사실 턱도 없다. 내가 가진 돈의 4배는 있어야 서울에 5평짜리 방 하나를 빌릴 수 있다. 온갖 부동산 애플리케이션, 인터넷 카페를 다 봐도 결과는 같다. 그래서 나에게 집이란 뜬구름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고개를 들면 다닥다닥 붙은 주택용 건물만 눈에 들어차는데, 내 것 하나 없다. 여력을 총동원해도 5평짜리 방 하나가 지금 내가 겨우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과연 집은 무엇일까. ‘집’이라는 키워드로 최근 마주한 몇 가지 장면을 공유한다.

1. 윤석열 정부 출범 둘째 날.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여한 동자동 주민들은 ‘흔들림 없이 공공개발’이라는 문구가 적힌 부채를 들었다. 동자동은 국내의 최대 쪽방 밀집지역이다. 올라가기 힘든 좁고 가파른 계단, 과연 보금자리가 될 수 있나 싶은 곳에 자리한 쪽방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쪽방 주민의 거주 환경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주민이 정착해 살게 하는 공공주택 개발 사업의 흔들림 없는 추진을 외치기 위한 집회였다.

2. 집회가 끝나고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한 경제지에서 집회를 다뤘다. 집회의 주된 요구였던 공공개발 사업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신 집회 중간에 일어난 불협화음을 담았다. 주변 자영업자들은 상업권 침해라며 소리를 높였고, 경찰이 이를 저지하며 잠깐의 소란이 있었다. 이를 보도한 것이다. 기사 끝머리에서는 부동산 중개인의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이 삼각지 일대의 개발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3. 윤석열 정부 첫날. 다주택자에게 부과하던 양도세 중과가 없어졌다. 다주택자의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두던 중과 조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나아가 인수위 시절에도 다주택자의 세 부담을 낮출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다주택자의 세 부담과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양도세 중과 유예 조치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것인지는 누구도 확언하지 못한다. 새 정부가 가장 먼저 감응한 불안의 주체는 바로 집값이 너무 올라 세 부담이 늘어난 다주택 보유자이다.

4. 지난 4월. 서울 창신동의 한 모자가 국가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살다가 집 안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모자가 사회복지제도 밖에 있던 이유는 다름 아닌 80년 된 낡은 집이었다. 망가진 싱크대와 아늑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낡은 벽과 바닥. 그런데도 재개발로 묶여 1억7000만원의 공시가격이 매겨졌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만한 가난의 조건에서 탈락한 것이다. 낡아서 무너져가는 그 집 때문에.

묻는다. 당신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누구의 불안에 공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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