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들’의 블루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한동훈 법무장관 딸 문제 덕분에 깊고 넓은 교육 불평등과 세밀하게 등급 매겨진 한국인 삶의 계급적 양식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에 작용하는 구조화된 ‘외부’의 힘은 ‘글로벌’이며 미국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한국 최상층계급은 완전히 글로벌화된 경제와 문화정치의 꼭대기에서, ‘미국’과 ‘영어’를 마음껏 동원하여 지위를 얻고 기득권을 세습한다. 그 자녀들은 이중국적 취득, 영어 유치원, 국제학교, 조기유학, 미국 최상위 랭킹 대학 진학 등의 과정을 밟는다. 아이비리그의 학부, 로스쿨 혹은 메디컬스쿨 등이 단기 목표일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 드는 돈과 이용되는 사회자본이 얼마나 되는지, 보통사람들은 짐작조차 어렵다.

그 바로 아래의 상층계급은 최상층을 흉내내거나 자식을 그렇게 만들려 뱁새처럼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인 모양이다.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TV드라마에서도 그 일단이 묘사되었다. 어릴 때부터 똑똑한 친구였다는 남자 주인공(차승원)이 은행 지점장이 돼 고향에 와서는, 여전히 첫사랑의 좋은 기억을 가진 ‘여자사람친구’(이정은)에게 몇억원을 빌리려 그녀의 감정을 이용해먹으려 한다. 이런 당혹스러운 서사에다 작가는 ‘우리들의 블루스’라고 이름 붙여 놓았다. 누가 누구의 ‘우리들’인가?

잘은 모르지만 요새 시중 은행 지점장 연봉은 1억5000만원 이상은 된다 한다. 근로소득으로는 상위 2% 이상에 해당하는 최상층이다. 그런 그가 빚지며 가난하게(?) 살며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딸을 LPGA 선수로 만들고 싶어서란다. 딸의 ‘꿈’이란다. 오늘날 ‘꿈’에는 돈이 많이 드는 것이다. 이름 있는 해외 교육기관에서 버젓한 예술가나 엘리트 운동선수 하나를 키우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누가 그런 걸 감당하고 있을까? 분명 남들 다 부러워하는 상류층인데 자식을 ‘글로벌 상층’으로 만들고 싶어 피폐하게 사는 중년남자들이 많다는 것은 진작 알려져 있긴 했다. 이제 그 비용은 더 높아져 평범한(?) 한국 법관, 교수, 의사, 대기업 임원 정도의 수입으로는 감당이 안 돼서, 저들 엘리트들은 ‘블루’(우울)한 모양이다.

예체능 분야는 그래도 재능이라는 특수한 능력이 작용하는 영역이지만, ‘보통’ 상층계급 사람들은 ‘공부’란 것으로 그 아래 등급에 있는 대한민국 ‘스카이포카’, 로스쿨, 의전원 등에 자식을 보내려 또 다른 박 터지는 레이스를 한다. 바로 ‘SKY 캐슬’과 조국사태 때 드러난 상위 2~3% 이상의 K1리그다. 강남이라는 그들의 거주지와 직업, 자산 규모를 상기해 보라. 문재인 정권은 부동산정책으로써 범인들의 ‘범접 불허’를 확정해주었다. 그 아래에는 ‘서성한중경외시… 어쩌고’ 하는 K2, 또 ‘인서울’하기 위한 상위 20~30%의 대중 리그도 있다.

특권층들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추잡하고도 기묘하다. 그들은 영어도 잘하고 돈과 힘도 너무 많아서 감히 천조국의 대입과 학문장의 규범까지 침범할 지경이며, 또 거기서 파생한 저질·사이비 제도까지 마구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이제 다시 ‘공정’을 떠올려보자. 문재인이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운운하기 전부터 이 말은 사기였고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을 가진 높은 분들이, 보통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다시피 하며, ‘합법적으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뛰어야 되는지, 영어 에세이를 어디서 누구한테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공부 공부 공부, 자식을 유치원 때부터 학대한다. 부모의 투자와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식들은 스스로를 질책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정신과에 드나든다.

윤석열 대통령은 특권 교육과 교육 농단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른 자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그래서 이제 윤석열은, 5년간 입으로만 ‘공정’ 떠들다 물러간 문재인을 정통으로 계승하는 길을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이 구축한 자식 사랑의 물질적 방법론과 교육열로 치장된 썩은 계급적 교육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그들의 블루스’ 가락에 어설픈 막춤 그만 추고, 아이들을 제대로 공부시키는 방법과 철학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저들이 덫 쳐놓은 ‘수월성’이니 ‘글로벌 리더’니 하는 개소리와, 능력주의의 헤게모니에서 자식과 함께 빠져나와야 된다. 사람 하나하나에 그들이 매겨놓은 한국식 차별과 미국식 랭킹의 굴레를 벗고 ‘해방’하는 인간으로 아이들을 다르게 키우려 같이 분투해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윤석열 정권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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