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 훼손하는 무투표 당선 ‘사태’읽음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6·1 지방선거 선거전이 한창이다. 거리마다 출마를 알리는 후보들의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출퇴근길에는 유세 차량마다 한 표를 호소하는 ‘절박한’ 목소리가 가득하다.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지방선거에서 당선증을 받으면 어떤 대우를 받게 될까. 17개 시·도의회 광역의원들은 지난해 평균 5982만원을, 226개 시·군·구의회의 기초의원들은 4062만원을 받았다. 서울시의원은 6654만원(2022년)을 받는 등 지자체 재정 여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는 월정수당과 의정활동비만을 합한 액수다. 공무원 기준으로 보면 광역의원은 2급 대우, 기초의원은 3급 대우로 보면 된다. 여기에 국내외 여비, 공통경비 등을 더하면 지방의원들에게 보장된 ‘급여’는 잘나가는 중견기업 직원들의 급여 수준을 넘는 액수다. 자치단체장은 지방의원보다 급여가 더 많다. 서울시장은 장관급, 광역단체장은 차관급 대우로 보면 된다. 기초단체장은 2급 대우가 대부분이지만 서울 송파·강서 등 인구가 많은 곳은 1급 대우를 받는다.

지방자치는 분권을 통해 대한민국의 균형발전과 주민자치를 실현하자며 시작됐다. 그러나 지방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는 정치불신만큼 부정적이다. 특히 대선 직후 치러지는 이번 지방선거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보다는 정당 평가 선거로 변질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시장·시의원·구청장·구의원 줄투표가 얼마나 심화될지가 벌써부터 관심사다. 가뜩이나 냉랭한 유권자들의 권리행사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6·1 지방선거전에서 또 생겨났다.

무투표 당선 ‘사태’다. 서울 25개 자치구 구의원은 373명인데 투표 없이 이미 당선이 확정된 구의원이 107명에 달한다. 4년 전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지역 무투표 당선 구의원 8명의 13배가 넘는다.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406명을 뽑는 시·군 기초의원 선거에서 50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기초의원 비례대표 선거에 출마한 4명도 무투표 당선자다. 4년 전 4명에 비해 13배나 많다.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은 무투표 당선 사례와 유형이 훨씬 많다. 광주 광산구와 전남 해남군, 보성군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민주당 후보가 무투표 당선됐다. 대구 중구와 달서구, 경북 예천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후보가 무투표 당선됐다. 선거 없이 당선이 확정된 전국 6곳의 기초단체장은 모두 이들 지역이다.

광역의원 무투표 당선 사태는 절반 수준이나 된다. 광주시의원 선거구 20곳 중 11곳에서, 전남도의원 선거구 55곳 중 26곳에서 민주당 후보가 무투표 당선됐다. 대구시의원 선거구 29곳 중 20곳, 경북도의원 선거구 55곳 중 17곳은 국민의힘 후보의 무투표 당선 선거구다.

전국적으로 광역의원·기초단체장·기초의원 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는 494명에 달한다. 무투표 당선자들은 투표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선거운동이 금지돼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이 때문에 무투표 당선자의 정보나 공약 같은 선거 공보물을 유권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무투표 당선 사태는 유권자들의 선택 기회를 박탈한다. 선거라는 형식에 의해 실현되는 대의민주주의 작동도 막는다. 지방자치가 심각하게 퇴보한다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역대 최대 규모의 무투표 당선 사태의 1차적 책임은 양당제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치권에 있다. 정당 중심의 지방선거가 치러지다 보니 정당색이 강한 곳에서는 아예 출마를 포기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전국 무투표 당선자 10명 중 3명(28.9%)이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이를 방증하고 있다.

정치권이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는 책임도 크다. 시민사회단체나 풀뿌리 지방자치 단체들은 20여년 전부터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제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공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회의원, 당협위원장의 자기 사람 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악평을 해도 틀린 말이 아닌 상황이 됐다.

이제 모든 선거를 정당별 비례대표제로 바꾸거나 대선거구제 중심의 선거구로 바꾸는 방안, 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지역정당 활성화 등 다양한 대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현실화시켜야 할 때다. 무투표 당선 사태가 근본적인 선거제도 개혁으로 이어지길 촉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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