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도 ‘야당 복’

양권모 편집인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국가안보회의(NSC)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국가안보회의(NSC)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시 대선 연장전으로 매김된 6·1 지방선거가 더불어민주당으로 하여금 후진 페달을 밟게 했을 것이다. 한동훈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했음에도,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던 민주당이 한덕수 총리 후보자 인준 가결로 전격 선회했다. 협치로 포장했지만, 억지춘향으로 읽힌다. 민주당 지지율이 20%대로 폭락하는 등 악화되는 여론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파놓은 함정에 안 빠지려고 임명 동의를 해줬다”(윤호중 비대위원장)고 했지만, 정작 스스로 함정을 판 건 민주당이다. 한동훈 법무장관 임명과 총리 인준을 연계시켜 대책 없이 시간만 끌다가 발목잡기 프레임에 포획되었기 때문이다.

양권모 편집인

양권모 편집인

청문회 정국에서 야당으로서 민주당의 얄팍한 밑천이 드러났다. 균형과 다양성, 탕평과 통합, 참신함과 미래 등 무엇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서오남’ 내각 인사를 견제하고 바로잡을 실력도, 노력도 없었다. 대통령 지인과 측근 검사들이 내각과 대통령실에 전면 배치되는 ‘검찰공화국’ 인사의 문제점을 제대로 이슈화하지도 못했다. 한동훈 법무장관 지명을 “대국민테러”라고 길길이 뛰었을 뿐 왜 부적절한 인사인지를 입증하는 데도 실패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청문회에서 한동훈 딸 스펙 쌓기 의혹을 적절하게 추궁하지 못했을뿐더러,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현직 검사장을 법무장관에 지명하는 부당성을 부각시키지도 못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 못한 민주당 청문위원들의 헛발질 때문에 외려 한동훈 후보자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장관 후보자들의 불공정 비리 의혹이 쏟아지고, 공정과 상식에 반하는 인사 내로남불이 거듭되면서 당초 ‘윤석열 인사’에 대한 실망 여론이 비등했다. 첫 내각 인사가 선보인 때 윤 대통령 당선인의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부정 평가를 내린 이유로 첫 순위에 ‘인사 잘못’이 꼽혔다. 한데 인사 교정이나 수북이 쌓인 도덕성 의혹과 비위에 대해 명쾌히 해명되지도 않았는데 부정적 여론이 절로 호전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무딘 칼날의 야당이 제대로 된 검증은커녕 실축을 연발하면서 역설적으로 ‘윤석열 인사’의 난맥을 희석시킨 결과다. ‘한동훈 청문회’와 한덕수 총리 인준 대응이 대표적이다. 더욱이 불통이나 인사 문제에서는 민주당 정부와 곧장 비교될 수밖에 없는 중첩의 시간이다. 인사 흠결과 의혹이 대두될 때마다 “당신들과 비교해서 뭐가 그렇게 문제야”라는 반문이 작동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5년 내내 ‘후진 야당 복’을 누렸다면, 윤석열 정부도 ‘야당 복’을 타고났다고 해야 할 판이다.

민주당의 결정적 실책은 새 정부 출범 3주 만에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대선 연장전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패배한 대통령 후보가 연고도 없는 지역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당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복수혈전을 자청한 꼴이다. 그러니 선거전략이 갓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론, 견제론에 맴돌게 된다. 견제론은 야당이 약자로 비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국민은 민주당을 약자로만 보지 않는다. 절대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 ‘검수완박’ 입법처럼 엉뚱한 데 힘자랑을 하는 걸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지방’이 빠지고 대선 연장전으로 비화하는 순간, 구도가 인물과 이슈를 압도하게 된다. 인물론에 우위를 보이는 민주당의 현역 단체장들이 곳곳에서 고전하는 이유다. 급기야 ‘졌잘싸’의 이재명 전 대통령 후보가 무명의 국민의힘 후보와 접전을 벌이는 지경까지 처했다. 이렇게 가면 ‘명분 있는 승리’는 고사하고 ‘명분 있는 패배’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모든 게 대선 패배 원인에 대한 성찰과 반성 과정을 건너뛰고 나선 결과다.

걱정되는 건 야당의 삽질이 윤석열 정부의 일방 질주에 레일을 깔아주는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불통의 용산 집무실 이전과 ‘검찰공화국 인사’의 면죄부로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벌써 총리 인준 결과를 ‘정치적 승리’로 여기는 분위기다. 검찰총장 출신의 0선 정치신인 대통령이 ‘정치’를 만만히 여기게 만들 수 있다. 극단적인 여소야대의 벽을 정치로 풀지 못하게 되면 남은 건 대결 수단뿐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익숙할 방식, 야권에 대한 사정(司正)의 칼날이기 십상이다. 벌써 전국 주요 검찰청 지휘부에 배치된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 취임 일성으로 ‘수사’ ‘권력 수사’를 외치고 있다. 기반이 취약한 정권일수록 ‘사정 카드’로 국정동력을 확보하려 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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