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목사·시인
[임의진의 시골편지] 오래살기 대회

봄비가 내려도 세게 내렸을 텐데 올핸 가물다. 선인장이 물을 주지 않아도 오래 잘 사는 것 같아 보일 뿐 속은 안 그렇단다. 선인장도 비가 내리길 누구보다 바라고, 가시 끝에 물방울이 맺히길 소원하는 식물이야. 그런데 뒤터 산밭을 일구는 한 할매는 삭신 쑤시는 게 덜해서 올해 날씨가 매우 좋단다. 비가 올라치면 온몸이 부서질 것 같다던가. 예수님과 부처님의 다른 점을 꼭 꼽으라면 ‘헤어 스타일’ 정도일 텐데, 이 할매는 불교를 믿다가 그도 절집이 멀어 포기. 대신 머리는 보글보글 파마로 볶아설랑 부처님의 두상을 카피 복사하여 사신다. 직업이 목사라 교회를 차리면 이웃지간이니만큼 교회 명절 때 오라는 소리에 거절할 수도 없고 당혹스러울 일. 동네에 ‘교회 같은 거’ 안 차려줘서 고맙다는 소릴 언젠가 하시덩만. 고마울 것도 참 별나고, 수도 없이 많은 시골살이다.

마을 건너편에 읍으로 난 큰길이 생기고 산등성이엔 아파트가 들어섰어. 아파트에 노년층도 제법 계셔. 다들 써금써금(써금털털)한 농가를 팔아버리고 아파트로 이사. 아파트로 돈을 가장 많이 번 사람은 땅주인도 건설사도 아니고 가수 윤수일씨라던데, 맞는 얘긴지 틀린 얘긴지. 아무튼 가수는 거기 안 살고 전직 농부들은 꽤나 살고 있어. 농가주택에 살며 정원을 단속하고, 농사짓는 동안 건강 삭신이 녹아내려 아리고 쑤시는 통에 도리가 없었단다. 그러면서도 밭일을 보러 전동 삼륜차를 몰고 윗마을에 나타나신다. 오래살기 대회는 과연 언제야 끝이 나는 걸까.

‘종이비행기 오래날리기 대회’를 해봤어? 미술 선생님은 가끔 운동장에 나가 수업을 했다. 나무를 그린달지 해당화가 가득 핀 학교운동장을 그린달지. 하루는 스케치북을 찢어 종이비행기 놀이. “가장 오래 날린 친구가 이 세상에서도 가장 오래 살 거야. 반대로 가장 빨리 떨어지면 어떻겠니. 다음 말은 안 할란다잉.” 선생님의 주문 기도. 내 비행기는 우리 반에서 맨 먼저 곤두박질쳤는데, 그것도 던진 손끝에서 곧바로 땅바닥으로 추락. 그래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삭신이 쑤실 때마다 뜨끔하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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