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의 죽음부터 막아야

[최현수의 사람을 생각하는 정책] ‘복지 사각지대’의 죽음부터 막아야

2014년 2월 생활고를 겪던 세 모녀가 죄송하다는 유서와 함께 밀린 월세와 공과금 몇 십만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에 놓여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국가와 지자체의 사회안전망으로부터 지원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

서둘러 법을 개정해 지원 기준 등 제도를 개선하고 심지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가구를 발굴해 지원하는 시스템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2019년 서울 관악구 탈북 모자, 2020년 방배동 모자, 2022년 4월 창신동 모자의 죽음…, 모두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삶을 힘겹게 버텨왔던 이웃들의 죽음을 여전히 언론에서 접하고 있다.

지난 4월 발견된 창신동 모자의 죽음은 2014년 송파 세 모녀와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복지 사각지대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사회안전망이 지닌 신청주의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창신동 모자 사건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엄격한 제도적 한계로 인해 발생한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지원받기 위해 두 차례나 주민센터에 신청했다. 그렇지만 보유하고 있던 오래된 낡은 주택이 소득인정액 산정에 반영되면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득이 없는데도 탈락된 전형적인 사례다. 서울 지역에 적용되는 기본재산공제 6900만원을 제외하고 남은 재산가액에 주거용 재산 환산율인 월 1.04%를 적용해 산출된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반영하니 2인 가구 생계급여 선정 기준(97만원)을 훨씬 초과해 탈락한 것이다. 재산의 소득환산율은 별도 기준을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저소득층 지원제도에서 주거용 재산에 적용되는 환산율(월 1.04%) 수준은 가혹하다. 임대차 3법 시행 이후 전세보증금과 월세를 상호 전환할 경우 적용하는 월세전환율 연 2.5%와 비교하면, 실제로 소득이 발생하지도 않는 재산에 대해 거의 5배나 높은 환산율을 적용한다.

빈곤·돌봄 아픔은 보듬어야 할 삶

문재인 정부는 아동수당 도입과 기초연금 인상 이외에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을 위한 주요 정책과제로 부양의무자 기준의 단계적 폐지를 추진한 바 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를 통해 보편적인 현금지원이 아니라 취약계층을 선별적으로 충분히 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재산의 소득환산제도를 폐지하거나 적어도 불합리한 소득환산율 수준을 시장 이자율 또는 기초연금에 적용하는 연 4%의 환산율을 반영해 획기적으로 낮추는 개편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실질소득이 낮은 저소득층이 최소한의 기본생활을 유지하도록 만들고 창신동 모자와 같이 제도적 불합리성으로 인한 사각지대를 해소해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나아가 1~2인 가구를 중심으로 통계청 중위소득과 격차가 존재하는 현행 기준 중위소득을 전면 개편해 통계청의 중위소득에 보다 근접하거나 동일한 수준으로 취약계층의 보장 수준을 높여야 한다.

또 다른 사각지대는 가족이 책임져야 하는 돌봄의 부담으로 발생하는 소위 ‘간병살인’ ‘돌봄살인’이다. 그동안은 고령의 노인 부부가 서로 돌보는 ‘노노돌봄’ 과정에서 주로 나타났지만, 최근엔 부모와 자식 간 간병이나 돌봄에 대한 부담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으로 나타나는 사각지대의 유형이다. 대구에 거주하던 20대 청년이 간병 부담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민들의 관심이 대통령 취임식과 한·미 정상회담 등에 집중되던 기간에도 부모나 자녀에 대한 돌봄 부담으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건이 전해지고 있다. 발달장애를 가진 여섯 살 자녀와 함께 투신한 성동구 모자, 발달장애인으로 성인이 된 30대 자녀를 오랫동안 돌봤던 어머니가 자녀를 살해한 인천 연수구 모자 사건이 모두 그러하다.

‘산 자여 행복하라’의 울림 퍼지길

서울시가 발표한 ‘고위험 장애인 가족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의 약 37%가 우울과 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하고 있으며, 약 35%는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거나 실제 시도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누구든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갑자기 돌봄 부담을 떠안을 수 있는 상황에서 가족을 돌봐야 하는 또 다른 가족의 부담을 온전히 그들만의 책임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나 가혹하다. 간병과 돌봄 사각지대에 대한 정책 지원이나 서비스가 부족한 상황, 지역사회의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은 윤석열 정부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살아 있는 우리 모두 행복하라.’ 최근 방송 중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윤석열 정부 역시 6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국정과제를 통해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공백이 길어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많은 언론에서는 재정건전성이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효율적인 지출구조 조정의 측면에서 교육개혁이나 연금개혁 등이 지체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물론 국가 운영의 차원에서 교육이나 연금 개혁은 중요한 과제지만, 국민들의 일상적 삶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의 죽음이 반복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정책 추진이 우선 시급하다.

그나마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예상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빠르게 지명된 것은 다행이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과 돌봄 공백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안고 있는 고독사 위험집단을 예방하고 발굴 지원하기 위한 고독사예방법 제정을 주도했던 김승희 전 국회의원이 장관으로 임명될 경우 보건복지 분야를 아우르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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