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와 차별금지법

최성용 청년연구자

2008년 여름 나는 부산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했다. 그때는 몰랐다. 2022년에도 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을 줄은. 당시엔 반차별공동행동이란 이름 아래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했다. 반차별공동행동은 2007년 9월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입법예고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됐고, 2017년 지금의 차별금지법제정연대로 이어졌다. 그렇게 장장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최성용 청년연구자

5월의 끝자락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단식농성을 한 미류·이종걸 활동가를 보며, 문득 박관현 열사가 생각났다. 박관현은 1980년 4월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돼 광주의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5월17일 계엄령이 발동되자 체포를 피해 광주 밖으로 피신함으로써 5월의 학살에서 살아남았다. 도피 생활을 하다 1982년 체포된 뒤 교도소에서 재소자에 대한 반인권적 대우와 열악한 조건을 목격했다. 박관현은 교도소 내 인권 개선, 양심수에 대한 차별 철폐, 재소자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시작했고, 단식을 이어가다 10월12일 세상을 떠났다.

박관현은 광주시민들을 향한 무도한 폭력, 도청에서 끝까지 항전한 들불야학 동지들의 희생을 떠올리며 곡기를 끊었다. 그가 품었을,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의 무게를 감히 짐작하기 힘들다. 다만 차별금지법에도 그와 조금은 비슷한 마음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15년 동안 차별과 혐오 앞에서 꺾여버리고 말았던 이들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언젠가 역사가 된다면, 그런 이들의 이름으로 집단적 역사가 쓰일 것이다.

박관현은 그 짧은 생의 많은 페이지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 권리, 재소자들의 인권 보장이라는 단어로 채워 넣었다. 그 삶은 너른 무등산의 품과 참 닮았다. 5월 광주에선 청각장애인, 택시·버스운전 노동자, 주먹밥을 지어 나눈 여성들, 황금동의 성판매 여성, 넝마주이라 불린 도시 빈민 등이 함께 싸웠고 희생됐다. 지역 차별을 겪는 광주시민을 포함해, 이들 모두가 오늘날 차별금지법에서 차별금지 사유의 목록에 해당될 시민들이다. 그 용감한 시민들이, 계엄군이 물러간 5일간 차별 없는 너른 품의 ‘해방광주’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아마 차별금지법이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5월이 가기 전에 꼭 물어봐야겠다. 차별과 혐오를 방관하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광주를 추모하고 기억한다 말할 자격이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은 5월정신을 지키겠다 했지만 정작 국민의힘 의원들은 차별금지법 공청회에 불참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의 말은 냉소와 조롱에 파묻혔고, 민주당은 여전히 소극적이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5월 광주에서 자라난 한국 민주주의 덕분에, 민주주의와 평등을 위한 싸움이 외롭지 않다는 점이다. 국회 앞 단식농성에 수많은 시민이 동조 단식으로 함께했다. 정치가 차별과 혐오를 묵인할지라도 이를 더 이상 시민들이 묵과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나는 그것이 5월 광주를 현재의 역사로 살아 숨쉬게 하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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