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공존할 미래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얼마 전 식당에 갔다가 로봇이 배달해주는 요리 접시를 받았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 아니었는데, 다른 식당에서 같은 종류의 로봇을 마주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테이블로 음식을 가져다주는 회색 몸피의 로봇은 다시 봐도 신기했다. 두 식당은 지역도, 취급하는 음식도 완전히 다른 곳이었는데 로봇 직원만큼은 똑같은 모습이었다. 생김이 낯선 로봇에게 고객들이 불만을 터트리는 경우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의 행간과 고객 개개인의 뉘앙스를 파악할 정도로 로봇의 개별성이 확보된 후라면 모를까.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서빙을 잘해주던 로봇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일행 중 한 명이 나가 직원을 불러왔다. 그분은 우리가 오랜만에 모인 오래된 친구들이라는 걸 곧 파악하고, 편안히 웃는 포즈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보기 좋다고 말씀하시곤 활짝 웃고 가셨다. 그분의 좋은 마음이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로봇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더라도 그런 웃음을 보였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서 인공지능 클라라가 인간에게 받는 질문이다. 인간의 마음과 비슷한 것을 갖춘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는 날이 올까. 인간의 요구를 세심히 살필 줄 아는 기계가 더 나은 인공지능의 정의라면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읽는 능력일 테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질문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이 도래한 이래 계속된 이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이제 몇몇 리더의 생각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은 미래 문명의 패러다임이 된 지 오래고, 국제 질서가 디지털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되리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디지털이 국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에 암묵적 공감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그렇다면 현실은 이 패러다임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수의 국가들은 국가적 차원에서 인공지능과 함께할 미래에 대응하는 중이다. 캐나다 고등연구재단의 국가 대응 비교 연구를 보면 국가마다 대응 방식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극명한 차이는 윤리 분야에서 나타난다. 한국은 인공지능 연구의 양적 성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반면, 인공지능 윤리 분야에서는 데이터가 없어 집계가 불가능하다. 눈여겨볼 만한 곳은 유럽연합(EU)으로, 분야마다 포괄적 어젠다와 구체적 정책을 두루 갖춘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다. 수십년 단위의 포괄적인 장기 대응 목표를 세우고, 다시 연 단위로 계획을 세분화시켜 각 부처의 행동 지침에 대한 이해를 돕는 방식이다.

국가 단위로는 독일이 EU와 가장 비슷한 전략을 세우고 있는데, 연방경제기후보호부, 연방교육연구부, 연방노동사회부가 주축이 돼 인공지능 국가 전략을 수립한다. 교육연구부는 인공지능에 대한 시민사회 이해를 돕고 그 사회적 영향 등을 토론하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킨다. 경제기후보호부와 노동사회부는 정부 정책과 시민사회 사이의 소통 플랫폼을 구축한다. 다양한 집단 참여와 사회적 담론의 생성은 독일의 거의 모든 정책 후방에 자리하며, 그 방향은 이왕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인간과 사회의 공익을 위해 사용하자는 데 있다. 윤리와 포용에 관한 안건 역시 이런 기회를 통해 논의된다.

담론을 충분히 듣고 사회 내 절충안을 만드는 단계적 정책 전략은 인공지능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독일은 거의 모든 국가 정책 거버넌스에 이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국가 정책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사회 구성원을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방위적 이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역시 기술 우선의 능력 고양이 목적이 아니라 ‘국가가 사회 연대의 안전망’이라는 관점을 유지한다. 성장에 목표를 두고 성장에 기여할 인재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국가 전략과는 궤가 다르다. 기술 혁신은 물론 중요하다. 인공지능 선도국으로의 도약은 국가적 기회임이 틀림없다. 다만 여기에 사회 구성원들의 충분한 이해, 담론의 대중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제반 문제 역시 과학기술의 이슈로만 풀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동반할 다양한 인문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담론의 장이 더 많이 열려야 한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 존재의 문제, 인공지능 개별성의 문제같이, 뜬구름을 잡는 담론들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그것은 이미 시작된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성숙한 사회의 시민으로 자리 잡을 유일한 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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