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찮은 이유로 더 위태로워진 ‘용산 텐트촌’ 삶읽음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서울 용산역에는 공중보행교가 있다. 용산역과 전자상가를 잇는 다리였던 이곳은 현재 서울드래곤시티호텔과 연결되어 있다. 오가는 사람의 풍모가 고급스러워질수록 원래 머물던 사람들은 쫓겨났다. 밤이면 박스집을 짓고 잠을 청하던 홈리스, 좌판을 열고 장사를 하던 노점상 같은 사람들이다. 보행교는 더 멋진 유리통로로의 변신을 위해 지난 3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문제는 새로 짓는 다리가 홈리스텐트촌을 지나 이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홈리스텐트촌은 용산역 뒤편 수풀 사이에 있는 20여동의 텐트 밀집소다. 공공부지인 데다 쓸모를 찾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곳에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스며들었다. 개발로 분주한 용산의 분위기에 길게는 20년, 짧게는 1년 이상 여기 거주한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이곳 주민들에게 텐트촌은 발붙일 곳 없는 세상에서 찾아낸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여기 사람이 산다는 것은 서울시와 용산구를 비롯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누구도 텐트촌 주민들에게 공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공사가 임박해서야 받은 퇴거명령에 우리는 주민들과 함께 대책 없는 강제퇴거를 즉각 중단할 것, 이주 이후 공사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지만 용산구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황망한 것은 이미 제도로 이주 대책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이다. 쪽방이나 고시원, 비닐하우스, PC방 등 불안정한 거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복지제도다. 우리는 당연히 이 제도에 의해 퇴거당하는 텐트촌 주민이 공공임대주택에 이주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용산구는 텐트촌 거주자들이 주소지 등록이 되지 않았고 실거주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은 원래 주소지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신청권을 보장한다. 서울시가 오랫동안 이곳 거주민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텐트별 거주자 명단까지 만들어두고 있었기 때문에 실거주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도 억지다. 국토부 담당자 역시 홈리스텐트촌 주민들에게 임대주택 신청 자격이 있음을 용산구에 안내했다고 하는데도 용산구는 여전히 답이 없다.

세상엔 아득한 격차가 있다. 법과 제도가 공정하게 작동할 것이라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이번 퇴거로 용산 텐트촌 주민들이 경험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격차였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있는 법과 제도조차 적용받지 못했고 하루하루 시간만 지나고 있다. 이후에 주거이전 대책이 마련된다 할지라도 지난 한 달간의 지옥 같은 시간은 용산구의 공무원이 아니라 텐트촌 주민들의 몸과 마음에만 남을 것이다. 한층 더 위태로워진 삶의 형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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