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의 꿈에, ‘지방소멸’에…여전히 슬픈 정선아리랑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원

(22) 강원도 정선읍

1971년, 2022년 정선읍 전경.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1971년, 2022년 정선읍 전경.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호랑이 소리 들리고 도깨비도 나타날 거 같은 강원도 첩첩산중에서 나무 베고 약초 캐며 살아가는 화전민들은 늘 무섭다. 이 무서움을 떨치기 위해 누군가랑 이야기라도 하고 싶어 인적조차 없는 숲을 향해 말을 건다. “거기 누구 없소?” “나는 북실리에 사는 사람이요.” 대답이 없다. 그러다가 외로움에 읊조린다. “아~ 외롭다. 외로워~.” 노래처럼 중얼거림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가사와 가락이 되어 ‘아리랑’이 탄생한다. 정선 아리랑이다. 흥겨운 진도·밀양 아리랑에 비해 아리랑의 원조라 불리는 정선 아리랑 곡조가 구슬픈 이유다.

1971년과 2022년 정선읍 사진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자리, 뒤에 산이 있고 앞쪽에 강물이 흐르는 한 폭의 수묵화다. 이처럼 정선읍은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이다 보니 인심도 넉넉하다. 사진을 비교할 때 2022년 사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녹색의 직사각형’이다. 이건 정선고등학교 운동장에 깔려 있는 인조잔디인데 1951년 농업학교로 개교한 정선고등학교는 여자고등학교로 변경되었다가 석탄산업의 사양으로 재학생이 감소되어 현재는 남녀공학이 되었다.

반달모양의 정선읍 오른쪽에 보이는 ‘정선 제2교’ 다리가 1969년에 만들어지기 전까지 주민들은 강가 양쪽에서 줄을 이어 나룻배를 잡아당겨 조양강을 건넜다. 물고기가 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깊은 한강의 최상류 조양강에 조선시대 때 뗏목이 등장한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경복궁의 건축자재로 정선의 소나무(금강송)가 뗏목에 실려서 조양강을 따라 흘러가다가 강물은 동강에 몸집을 불려주고 동강은 남한강을 굽이쳐서 마침내 뗏목은 한양 마포나루에 도착한다. 천리물길 노를 저어가는 떼꾼들이 ‘배가 뒤집히면 죽는다’는 두려움에 불렀던 ‘정선 아리랑’이 강원도 소나무와 함께 경복궁 중건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에게 전해지면서 정선 아리랑은 전국에 퍼진다.

떼꾼들이 나무를 팔아 번 돈을 ‘떼돈’이라 하는데 떼돈은 이후 ‘노다지’로 변한다. 일제강점기 정선지역의 금광은 노다지의 꿈으로 황금광이라 불리었다. 해방 후 석탄은 검은 노다지로 정선에 외지인들이 나타나면서 흥청이던 탄광촌이었지만 1990년대 폐광이 되고 그 자리에 카지노가 들어섰다. ‘한탕’을 꿈꾸며 몰려드는 사람들의 카지노가 지역경제 패권을 장악하고 ‘지방소멸’이라는 괴물이 점점 다가오는 시골마을에서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 정선 아리랑은 여전히 슬플 수밖에 없다.

*이 칼럼에 게재된 신문의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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