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의 노래, 정태춘’의 미학읽음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그의 외로움이 내 것인 양 힘들었고
동시대를 살아준 것에 고마움 느껴

우리가 정태춘의 음악을
받아들여 온 것이 아니고 거꾸로
그의 음악이 우릴 받아주고 있었다

정태춘, 온몸이 노래고 예술이다. 그의 몸은 감각적 촉수로 시를 쓰는 큰 이성이다. 흔한 계산적 이성 주체와는 거리가 멀다. 거꾸로 그의 몸은 바깥의 사물과 사태, 곧 현실의 부름에 반응하는 객체다. ‘객체 우선’은 그의 노래를 횡단하는 미학이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음악을 해석하려면 그것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로 나눠야 한다. 그 순간 그 음악만의 특별한 감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추상화된 단순한 음의 연결을 해석할 수 없으면 특별한 감성은 그저 개인적 감정 분비물로 소비될 뿐이다. 부족하더라도 그의 음악을 구성하는 심미적 요소를 사유하려는 까닭이다.

음악은 수학적이면서 마법적이다. 기호들의 집합인 음악은 마법의 순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피가로의 결혼’이 교도소에 울리는 순간, 수형인들 사이의 장벽은 사라진다. 내용 없는 단순한 형식의 음표들이 한순간에 모든 부조리를 해체한다.

정태춘의 노래는 날-현실, 모든 부조리를 블랙홀처럼 한 점에 품고 진실의 순간으로 쳐들어간다. 흐름에서 단절된 처절한 순간, 그 순간은 잊힌 과거가 아니라 ‘지금-시간’이다.

정태춘은 욕심과 체념의 굴레에서 서성이는 세속의 시간을 강제로 정지시킨다. 시간을 멈추게 하는 창작 과정은 강도 높은 노동이다. ‘우리들의 죽음’에 녹아 있는 정태춘의 고통은 밖에서 자물쇠가 채워진 3평의 지하셋방 안으로 우리를 단숨에 끌고 간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에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정태춘의 음악은 구속 없이 사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날숨과 들숨의 리듬으로 재구성한 서정시였다. 자기 감성으로 무지개를 그리는 풍경화와는 거리가 멀다. 1집 <시인의 마을>에서 5집 <북한강에서>까지 그가 노래한 서정은 다루기 까다로운 질료 더미이자 단단한 자연 세계다. 사회와 문화에서 배제된 사람만이 잠깐 경험할 수 있는 감금된 세계였다.

새벽노래를 부르던 탁발승 한수는 억겁 속으로 사라진 속세 물결 속으로 침잠한다.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또 가득 흘러가고 … 과거로 되돌아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소.”

정태준의 음악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저항, 진보, 희망과 다르다. 이런 말들은 다가올 미래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반면 정태춘이 기다리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그의 노래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 그는 상처 입은 과거가 또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구제하는 날을 기다린다.

간절한 기다림은 단단한 사물들의 소리였던 서정시로부터 어느날 그를 멀어지게 한다. 5·18을 대면한 이후 그는 한참 동안 ‘산과 산이 애기하는 소리, 나무와 새들이 애기하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광주천’을 부르기 시작한 그에게 아우슈비츠 이후, 아니 5·18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어쩌면 야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는 그의 노랫말은 계속해서 희생자를 유린하는 미래의 적들을 향한 총탄처럼 지금도 비장하다.

정태준의 노래는 언제나 위험하고 불온하다. 그는 스스로 불법을 실천하면서까지 합법이 더 불법이라는 것을 밝힌 불손한 가수다. 가끔 자기 노래만큼은 반윤리적이지 않다고 호소하는 가수들은 있었지만 심의제도 자체가 반윤리적이라고 고발한 가수는 그가 유일하다. 그만큼 자기를 구속하면서까지 자유를 향한 열망으로 살아온 가수는 없었다.

그의 자유는 사물의 소리에 대한 반응과 부조리에 대한 반응을 지나서 이제 때려 눕혀진 자들, 새장에 감금된 생명들의 몸이 된 아치의 노래로 흐른다. 아치가 부른다.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아치의 노래>를 두 번 보았다. 처음엔 험난한 삶과 음악 속에서 그가 견뎌야했을 외로움이 내 것인 양 힘들었다. 두 번째는 그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준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가 그의 음악을 받아들여 온 것이 아니었다. 거꾸로다. 그의 음악이 우리를 받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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