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여배우가 고국에 쏜 ‘고언’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지난달 프랑스에서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낭보가 전해져왔다.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같은 무대에서 여우주연상은 이란 출신의 배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Zahra Amir Ebrahimi)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고국의 매체는 침묵을 지켰다. 왜일까?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이 영화는 여성에 대한 영화입니다. 여성들의 몸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들의 얼굴, 머리, 손, 발, 가슴, 섹스 그리고 이란에서는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치스러웠지만 제 곁에는 영화가 있었고, 고독했지만 영화가 있었습니다. 어두웠지만 영화가 있었어요. 오늘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기쁨의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이란의 국민들, 제 마음은 아바단에 있습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란인 배우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하지만 에브라히미는 이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2006년 이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에브라히미는 ‘섹스비디오’ 스캔들에 휩싸여 검찰의 강력한 조사를 받았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조국으로부터 도망쳐야만 했다. 프랑스로 망명한 에브라히미는 16년 후 칸영화제의 여주인공으로 무대에 서서 감격스러운 소감을 전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강력했다. 얼마 전 이란 아바단 지역에서 있었던 대형 건물 붕괴 사고와 뒤이은 시위대 탄압 사건 등과 같은 고국의 뼈아픈 현실에 대해 페르시아어로 용감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그녀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는 <성스러운 거미(Holy Spider)>였다. 2000년대 초 이란의 성지 도시 마샤드에서 성매매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연쇄살인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이란 국내 국영 미디어에서는 그녀의 소감을 들을 수 없었지만, 디아스포라 중심의 페르시아어 위성방송들은 에브라히미의 수상 소감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 5월 이란 아바단 지역에서 건설 중인 10층짜리 건물이 무너지면서,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41명에 달하고 있다. 이 붕괴 사고는 인재라고 지적되고 있으며 사회 부패의 결과물이라 여겨진다. 이에 분노한 시위대를 강압적으로 저지하면서 시민들에게 큰 분노와 실망을 안겼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식량 위기가 이란에도 영향을 끼치면서, 최근 식량 보조금 삭감으로 인해 식재료 가격이 크게 상승하였다. 에브라히미는 바로 이러한 현실들을 자신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전한 것이다.

국제 무대에서 뼈아픈 국내 현실을 꼬집는 망명 여배우 에브라히미와 이란에서 금기시된 내용들을 영화로 만든, 덴마크에 거주하는 이란 출신 알리 아바시 감독의 행보가 이란 정부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란 영화기구와 문화이슬람지도부는 <성스러운 거미>가 칸에서 수상한 이유가 “모욕적이고 정치적인 동기가 있는 움직임”이며, 영화 제작에 거대한 배후가 있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이란 시민들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바로 도망치듯 고국을 떠났던 에브라히미의 목소리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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