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판옵티콘’

김민아 논설실장
서울 서초동에 자리잡은 대검찰청. 이준헌 기자

서울 서초동에 자리잡은 대검찰청. 이준헌 기자

검사들의 세계지도는 축척에 따라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의 수도,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이 자리 잡은 ‘서초동’과의 거리에 따라 그려진다. 기준점을 한 곳 추가하면, 법무부가 위치한 경기 과천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달라졌다. 새롭고 강력한 기준점이 정해졌다. 대통령실이 위치한 용산이다.

김민아 논설실장

김민아 논설실장

윤 대통령의 검찰 출신 중용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문제는 예상된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는 점이다. 법무부 장차관은 지면 사정상 넘어가자. 대통령실 총무·인사·공직기강 라인에다 법제처장, 국가보훈처장, 금융감독원장,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까지. 숫자보다 더 큰 문제는 개개인의 도덕성·전문성, 그리고 윤 대통령과의 사적 인연이다. ① 도덕성. 윤재순 총무비서관은 성비위로 징계성 처분을 받았고,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은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다. ② 전문성. 경제·금융수사 경험이 풍부하다는 이복현 금감원장은 취임 다음날 기자들 질문에 “시간을 달라”는 답만 되풀이했다. ③ 사적 인연.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 대통령 장모의 변호인, 조상준 국정원 기조실장은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변호인이었다.

인사·정보·수사·금융감독 등 사정 관련 기관마다 ‘윤석열 사단’이 빼곡히 들어찼다. 국무총리실조차 예외가 아니다. 한덕수 총리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던 국무조정실장 인사는 불발되고, 대신 총리 비서실장에 전직 검사가 발탁됐다.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은 아니지만 역시 서초동(법원) 출신인 고교·대학 후배를 행정안전부 장관에 앉혔다. 행안부는 장관 업무에 ‘치안’을 추가하고 경찰국을 신설해 경찰의 목줄을 쥘 참이다. 이상민 장관은 “경찰이 왜 독립을 해야 되나”(연합뉴스)라는 어록까지 남겼다. 기업조사를 맡는 공정거래위원장까지 당초 계획대로 검찰 출신에게 맡긴다면? 총리실을 위시한 공직사회부터 공기업, 금융기관, 민간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사정(司正)의 판옵티콘(원형감옥·일망감시체제)’이 구축될 판이다. 헌법학자인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형 하나회의 출현”(경향신문 칼럼)이라 했다.

윤 대통령은 여야, 보수·진보 할 것 없이 ‘검찰 몰입 인사’를 비판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외려 “과거에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들이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이 당분간은 검사 출신을 기용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고 말하자 바로 뒤엎는다. “필요하면 또 (기용)해야죠.”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손쉬운 길이어서일 터다. 잘 아는 사람, 친한 사람, 무엇보다 ‘상명하복’이 몸에 밴 사람을 갖다놓으면 대통령은 편하다. 차기 총선까지 2년 동안, 큰 힘 안 들이고 주요 분야를 통제하고 장악할 수 있다. 각 기관 간에 거미줄처럼 얽힌 네트워크는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원천이 될 것이다. 2년 후엔? 판옵티콘 구축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사들을 엄선해 국회로 불러들이면 된다. 물론 그사이 민주정치의 기본인 견제와 균형은 실종될 것이다. 형사사법의 공정성은 형해화할 우려가 크다. 수사·기소·형사재판·형집행 등을 포괄하는 형사사법은 실체적으로 공정해야 함은 말할 나위 없고, 외관상으로도 ‘공정해 보여야’ 한다. 사법신뢰의 필요조건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대선 출마선언에서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며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의 이권 카르텔이…”라고 말했다. 꼭 1년 만에 패러디가 가능해졌다. “대통령과 사적 인연으로 얽힌 소수의 검찰 카르텔이….”

현장기자 시절 대검찰청에 출입했다. 청사 10층에 지금은 사라진 중앙수사부(중수부)가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두꺼운 철문이 가로막았다. 인터폰을 눌러 안에서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었다. 중수부에서 오랫동안 일한 수사관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던 거물 피의자도 등 뒤에서 ‘쾅’ 하고 철문이 닫히면 ‘실례’(절박성 요실금)를 하는 경우가 있다.” 윤 대통령은 중수1·2과장을 지냈다. 그 시절 업무 방식에 익숙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러나 더 이상 검사가 아니다. 혹여 500년 전 “군주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했던 마키아벨리의 말에 끌리는가. 지금은 2022년이고, 한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민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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