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여, 활동가가 되자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지난 5월4일 정치하는엄마들은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노키즈존 가고, 차별금지법 오라!’라는 슬로건을 들고 국회 앞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6월13일에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로 규정한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은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하면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어린이들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어린이와 함께 활동하면, 관련 기사들에는 꼭 이런 부류의 악플이 달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 “아기들 팔아서 저러고 싶을까” “아기들 이용하는 어른이 있다니 악마가 따로 없네” “2살이 헌법소원? 참 개소리도 가지가지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 중에는 태아도 있었으니, 기후위기가 뭔지도 모르는 아동을 청구인으로 내세워 부모들이 쇼한다는 말이 나옴직도 하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면 굳이 ‘쇼’라고 비아냥거리진 않았겠지만. 그런데 ‘정치적으로 이용, 아기를 팔아서, 아기들 이용하는 악마’ 같은 발상은 대체 무슨 정서에서 기원한 것일까? 해묵은 정치 혐오밖에 떠오르는 답이 없다.

어린이와 함께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자녀의 이름으로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양육자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유산을 남긴다는 확신을 가지고 활동한다. 우리의 행동은 조기교육을 시키는 부모, 영·유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부모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도 자녀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녀에게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활동가로 성장시키고자 노력한다. 나보다 더 긴 미래를 살아갈 내 딸과 모든 어린이를 위해 기후위기 문제에 대응해 보지만, 어린이들이 성장하는 속도는 빠르고 반면 사회의 진보는 한없이 더디다. 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서 딸에게 물려주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삶의 방식을 딸에게 물려주려는 것이다.

물론 엄마의 바람일 뿐 딸에게 강요할 순 없다. 활동가는 강요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5~6세 무렵 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부터 쓰레기 문제, 난개발 문제, 동물 학대 등 우리 주변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본바 딸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갖추고 있다.

자녀와 함께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부모들은 자녀를 피켓 대신 데리고 오는 게 아니다. 자녀는 도구가 아니라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갈 동반자이고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사람은 혼자서만 잘 살 수 없다’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또한 어린이도 어른을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해 준다.

어떤 어른이 ‘사회문제에 신경 쓰지 마라. 너만 잘 살면 된다. 그러려면 경쟁에 집중해서 이겨라’라고 말한다면 그런 어른들에게 항의하는 어린이가 되었으면 한다. ‘어떤 존재도 혼자만 잘 살 수 없어요. 어른들이 그런 착각에 빠져서 세상을 망친 거예요. 저는 다른 존재들과 진짜로 잘 사는 방법을 찾을 거예요’라고. 엄마는 기자회견에 나가면서 자녀에게는 집에서 공부나 하라고 시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개쓰레기들이군, 먼저 흑석초 4의 인터뷰 내용. ‘어른들은 우리 미래와 상관이 없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미래에 어른들은 없을 거고, 우리는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100% 누군가 주입한 문장이다. 어디서 유럽의 어린이들이 수년 전에 환경 데모한 것을 베껴서 돈 벌어볼 목적일 뿐이다.” 우리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흑석초 4학년 어린이의 발언문 초안을 보았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자필 원고를. 발언자의 생각을 부모가 주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걸 쓰레기라고 비난한다면, 대체 당신의 사고는 얼마나 자생적인지 묻고 싶다.

정치 혐오야말로 자본과 정치권력을 가진 기득권자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 온 이데올로기 아닌가? 아직도 재벌 대기업은 신규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고 한국 정부는 그걸 허가해 주고 있다. 환경 데모가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정치 혐오가 그들의 돈벌이 수단이다. 불쌍하게 이용당하는 것은 어린이들이 아니라 정치를 혐오하는 바로 당신이다.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헌법소원을 청구한 어린이들은 악플을 읽고 상처받는다. 악플은 어린이들의 정치 활동을 위축시킨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 말한다.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는지 지켜보자고, 엄마는 우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변할 거라 믿는다고, 그때는 한낱 악플 같은 건 기억도 나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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