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서울 녹색 삶 지망생입니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최근 나는 동료들과 전주로 짧은 ‘제로 웨이스트’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전주 곳곳의 채식 식당들을 탐험하며 동물성 재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비건 식도락을 즐기다 모악산에 둘러싸인 고즈넉한 숙소에 묵었다. 주인장이 어린 시절을 보낸 주택을 숙소로 꾸민 공간 곳곳에 다정한 사연들과 따뜻한 아우라가 스며 있었다. 벽에는 가족들의 어릴 적 사진과 막내가 그린 낙서가 남아 있었고, 오래된 원목 가구와 벽은 반질반질 윤이 났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그리고 플라스틱 프리 물건들이 여상한 자태로 널려 있었다. 주방에는 미세플라스틱이 나오는 아크릴 수세미 대신 선인장 모와 코코넛 솔로 만든 수세미가, 일회용 키친타월 대신 쓸수록 부드러워지고 흡수가 잘되는 다회용 소창 행주가 걸려 있었다. 우리는 고체 설거지 비누로 그릇을 씻고, 각설탕처럼 생긴 고체 샴푸, 컨디셔너, 보디워시 바로 몸을 씻었다. 세면대에는 플라스틱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과 알약처럼 생긴 고체 치약이 놓여 있었다. 아침으로는 빵집에서 용기에 담아온 채식 식빵과 다회용 스테인리스 필터에 내린 커피를 즐겼다. 애초에 포장이 없으니 일회용 쓰레기도 나오지 않았다. 20대의 젊은 주인장은 달마다 친환경 모임에 무료로 숙소를 제공했다.

그동안 나는 텀블러, 장바구니, 수저, 스테인리스 빨대 등을 이고 지고 다녔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내 무거운 짐이 채식주의자에게 들어온 추석 한우 세트 같은 선물이 돼버렸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몇 년 전 태국 방콕에서 경험한 제로 웨이스트 공간을 떠올렸다. 5층 건물 전체가 제로 웨이스트 카페와 가게, 워크숍 공간과 여행자 숙소였다. 위층 숙소에서는 텀블러에 물을 리필해 마시고 아래층 카페에서는 용기를 빌려 길거리 음식을 담아와 먹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두어 곳의 제로 웨이스트 가게만 있을 뿐이라 이런 공간은 아마존의 분홍 돌고래처럼 국내에는 없을 거라고 여겨왔다.

어릴 적 보고 들은 것이 별로 없었던 나는 그저 ‘인 서울’이 인생 목표였다. 서울에 살기 전까지 내 상상력의 한계는 딱 서울까지였다. 그리고 서울에서 지낸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고향 앞에 서서, ‘탈서울’의 다른 삶을 꿈꾼다. 서울은 멋진 도시지만 땅값도 비싸고 속도도 빨라서 다른 삶을 실행하기도 어렵고 실패하기도 쉽다. 이번 여행을 통해 지역을 지키며 그 너머의 삶을 구현해내는 사람들을 보았다. 군산의 한 제로 웨이스트 가게 사장님은 고향을 떠나는 청년들을 보며 “임아, 군산을 떠나지 마오”의 심정으로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그들은 ‘대도시의 열탕 같은 삶과 농어촌의 냉탕 같은 삶’을 벗어나 냉탕과 열탕 사이 ‘온탕’의 삶을 만들고 있었다. 서울의 열탕이 아니었다면, 나는 제로 웨이스트 백화점과 게스트하우스, 복합공간을 상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대안을 일구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탈서울 친환경 생활’을 실험해보고 싶어진다. ‘냉탕과 열탕 사이’는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의 독립서점에서 구입한 <탈서울 지망생입니다>에서 가져왔다. 대안을 일구는 작은 공간들의 연결이 ‘탈서울 녹색 삶’을 꿈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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