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는 광장을 열어라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지난 5월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가 낸 서울광장 사용 신청에 대해 열린광장시민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미 2019년 서울시 인권위원회가 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만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또다시 발생한 수리 지연이었다. 그리고 지난 15일 위원회는 신체 과다 노출과 유해 음란물 판매를 하지 않는 ‘조건부’로 광장 사용을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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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든 광장을 사용할 수 있으므로 문제없다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서울광장은 ‘허가제’로 운영되던 것을 주민들의 힘으로 누구나 이용 가능한 ‘신고제’로 바꾸어낸 곳이다. 그럼에도 특정 집회의 내용을 판단해 광장 사용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다. 무엇보다 퀴어문화축제에 노출과 음란의 꼬리표가 붙으며 성소수자 혐오가 확산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위원회의 결정은 광장 사용에 있어 차별을 금지한 헌법과 법령에도 반한다 할 것이다.

집회의 목적과 장소가 갖는 연관성을 고려할 때, 도시 광장은 집회의 자유 보장을 위해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도시 광장은 일반적으로 해당 도시의 중심적 건물 앞에 위치하여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며, 시민들의 공론장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광장은 그 자체로 정치, 집회의 공간으로서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공적 광장 이론이라는 법리를 발달시켜 왔다. 이는 역사적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왔거나 정부와 지자체가 표현 활동을 위해 개방한 공적 광장에 대해 정부는 아주 예외적 경우에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법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광장에서의 집회의 자유가 더욱 제한되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만든 광장 운영에 관한 조례들을 살펴보면 정치, 노동, 종교적 집회에 대해서는 지자체장이 허가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들이 많다.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가 시민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현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이러한 조례들은 헌법상 금지된 집회 허가제로 위헌적 조치들이라 할 것이다.

인천시의 ‘인천애(愛)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는 이러한 잘못된 행정의 극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천시는 2019년 시청 앞 광장을 인천애(愛)뜰이라고 이름 붙이고 시민들에게 개방했지만, 관련 조례에 따라 잔디마당에서의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한다. 실제로 잔디광장에서 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인천시가 한 시민을 고발한 사건에서 검찰조차 해당 조례에 위헌적 소지가 있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해당 조례는 아직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광장과 집회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서울광장이다. 2004년 서울시가 만든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는 서울광장을 시장이 ‘심사’를 하여 ‘허가’를 하는 곳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9년 추모제를 불허하는 등 선별적으로 광장 사용을 허가했다. 이에 시민들은 10만명의 서명을 모아 광장 조례 개정안을 주민발의로 이루어냈다. 그리고 같은 취지의 의원 발의안이 2010년 시의회를 통과해 서울광장은 지금과 같이 신청만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서울광장이 또다시 성소수자를 비롯한 시민들에게 제한적인 공간이 된 것이다.

누구나 차별 없이 집회의 목적에 따른 장소 사용은 보장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서의 서울광장이 변화해 온 그 의미를 되새기며 조건부가 아니라 전면적으로 광장을 퀴어문화축제에 개방해야 한다. 지난 5월14일 한 차례 금지되었던 대통령청사 앞에서 무지개물결이 행진했던 것처럼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무지개 깃발이 오는 7월16일에도 자유롭게 펼쳐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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