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감상, 그리고 이익공유

김태권 만화가
[창작의 미래] 창작과 감상, 그리고 이익공유

창작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나는 지금 그리스 신화, 발터 베냐민의 이론, 웹3.0 등을 한 줄로 꿰듯 생각해 본다. <스토리, 꼭 그래야 할까?>라는 따끈따끈한 신간을 읽었기 때문이다. 지은이 문아름과 양혜석은 웹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교수다.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화가

두 가지 사실이 눈에 띄는 책이다. 하나는 기존의 작법서를 아주 많이 읽고 충분히 소화한 다음 정리해놓았다는 점. 기성 작가에게도 도움이 된다. 또 하나는 이 책이 무척 친절하다는 점이다. 처음 작품을 쓰는 작가 지망생에게 용기를 준다. 그런데 눈 밝은 독자님은 알아차리셨을 터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서로 창과 방패같이 부딪치는 상황을.

옛날 작법서는 친절하지 않았다. 작법서란 창작자가 다른 창작자를 위해 쓰는 책인데, 옛날 창작자들은 서로 까칠했기 때문이다.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상처 받는 말을 들었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한참 힘들어 할 때 헤밍웨이가 일부러 조롱하는 시를 보내 약올린 일은 악명 높다. 반면 독자에게는 친절하게 굴어야 사람 취급을 받았다. 창작자와 감상자의 전통적인 구별이 이랬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이 책은 그리스 고전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작법 이론, 이를테면 토비아스의 ‘스무 가지 플롯’ 이론이나 보글러의 ‘열두 단계 이론’ 등을 창작자가 알고 있다고 전제하며 썼다. “(이 책은) 웹툰과 웹소설을 준비하는 스토리텔러들이 실제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순서에 따라 구성”되었다. 그런데도 감상자에게 말을 거는 듯 친절하다. 이 특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의 구별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발터 베냐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이러한 상황을 예견한 바 있다. “(19세기 말부터) 많은 수의 독자가 필자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독자는 언제든지 필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

베냐민의 관점이 오늘날 인터넷 환경에 들어맞는다고 나는 쓴 적이 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가 명확했던 시대에 소비자도 생산자가 되는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는 웹2.0의 시작”이다. 책 <웹3.0 레볼루션>에 실린 윤준탁의 글은 베냐민의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요즘 사람들은 웹3.0에 대해 이야기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웹3.0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웹2.0 시대에는 감상자도 창작자가 되지만 이익은 플랫폼이 차지했다. 웹3.0의 시대가 오면 창작자와 감상자도 “콘텐츠와 데이터에 대한 정당한 가치와 소유권”을 나누어 가질 것이라고 한다. 달콤한 전망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지 회의적인 사람도 많다. 아무려나 이 장밋빛 약속이 지켜지면 좋겠다고 나는 상상한다. 나 역시 창작자니까. 그리고 열심히 창작해야겠다. 막상 웹3.0의 때가 되었을 때 내놓을 작품이 없으면 곤란하니까. 창작하다 막히면 그때마다 <스토리, 꼭 그래야 할까?>를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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