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들의 전쟁터

오수경 자유기고가

연세대학교 학생 3명이 임금 인상과 인력 충원 등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석 달 가까이 집회를 하고 있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뉴스를 접하고 눈을 의심했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집회를 이어 가는 동안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여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한 업체와 학교를 상대로 한 게 아니라 노동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그 이유를 찬찬히 살펴봤다. 학교에서 소음을 내면서 시위하는 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며 “추후에 장기적으로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청구한 금액은 638만원. 한 학기 등록금을 기준으로 주말을 제외하고 수업 일수를 나눠 피해 일자를 따져 산출하고, 정신적 손해배상 금액까지 더했다. 그 꼼꼼한 계산 내역을 보고 감탄하다가 새삼 궁금해졌다. 그렇게 피해액(?)을 산출하는 능력이 노동자들이 석 달 가까이 집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파악하고 그 노동자의 권리를 누가 박탈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왜 사용되지 못했을까?

소송을 건 학생들 개인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비단 그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가수 싸이가 여는 ‘흠뻑쇼’라는 이름의 콘서트에 물 300t이 뿌려진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배우 이엘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에 관한 비판적 견해를 밝히자 논란은 확산되었다. 연예인의 한 줄 글이 논란씩이나 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지만, 그 비판이 싸이가 아닌 가뭄을 걱정하며 물을 아껴 쓰자고 말하는 이들을 향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내돈내산’이 시대정신이고 모든 일에 ‘소비자 마인드’로 접근하는 게 익숙하니 “가뭄이니 물을 아끼자”는 말이 얼마나 불편하게 여겨졌을까? 내 돈으로 티켓 사서 즐기려는 권리와 자유가 부정되는 현실이 얼마나 불공정하게 여겨졌을까?

두 사건은 별개 같지만 연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권리가 개인화되고 시장의 영역에 흡수된 사회에서 노동자와 노동자의 권리 혹은 약자와 약자의 권리, 즉 ‘권리들’이 충돌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내’ 권리를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개인들을 억누르고 배제하고 고립시키려는 발상이 사회적 발언권을 얻어 득세하고 있다. 타인과 약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의 권리를 조정하거나, 권리를 ‘함께’ 보장받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힘쓰기보다는, 오직 ‘내’ 권리만 앞세우며 그것을 침해한다고 간주되는 존재들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우리가 누리는 권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배분되어야 할지, 타인의 권리와 내 권리가 충돌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따위의 질문은 사치일지 모른다.

노동자들이 왜 몇 개월 동안 집회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구조를 이해하는 사고력과 내가 참여한 콘서트가 가뭄 때문에 근심하는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감지하는 감각이 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권리는 오·남용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리를 ‘잘 누릴’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쫓겨나는 이들을 위해 나의 권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질문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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