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올드 보이’와 환경친화적 경제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나도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었다. 김영삼 시절부터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번의 정권교체를 보았다. 아주 개인적인 단상이라면, 환경에 관해 가장 적극적인 대통령은 김영삼이었던 것 같다. 21세기를 맞으면서 ‘비전 21’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했는데, 20세기 후반인 시대상을 감안하면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삼성도 지구환경연구소라는 환경 관련 연구기관을 운영했고, 이건 현대나 LG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은 아마 한국 사회가 환경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단일 사안일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도 공해 문제에 대해 아주 적극적이었다. 기억할 만한 사건은 1997년 수질이 급격히 악화된 시화호에 해수 유통을 결정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지난 세기의 얘기지만, 김영삼은 나름대로 환경 문제를 풀려고 고민하기는 했었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시간이 많이 흘러가고, 세월이 바뀌었다. 만약 요즘 낙동강 페놀 사건이 벌어지거나, 시화호 오염 사태가 벌어지면 그 시절처럼 과감한 조치들이 뒤따르게 될 것인가? 녹조로 인한 낙동강 식수오염 문제가 해마다 얘기되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요즘 같은 정치 과잉 시대에 김영삼 때의 시화호 해수 유통이나 김대중 때인 2000년의 동강댐 백지화 같은 일이 벌어질까? 유튜브에서 “이놈이 문제다, 저놈이 문제다” 한참 떠들기만 하고 결국 아무 결정도 못할 것이다. 대통령의 힘이 너무 세서 문제라고 하는데, 환경만 떼어놓고 보면 대통령의 힘은 김영삼과 김대중 시대에 비해 더 약해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0년대 초반 당시의 재정경제부를 ‘지속가능경제부’로 개편하자는 논의였다. 환경부 등 소위 규제부처 차원에서 환경 문제를 다룰 게 아니라 아예 경제부처의 목표 자체를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바꾸자는 거였다. 지금 돌아보면 과연 그런 시대가 있었나,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윤석열 정부 인사들 환경 무관심

자, 이제는 윤석열 시대, 환경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안철수가 마무리한 인수위 보고서와 최근에 나온 ‘새정부경제정책방향’ 보고서를 읽어봤는데, 환경에 대해서는 정말 관심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윤석열이나 안철수나 심지어 이준석까지, 환경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는 사람들 아닌가 싶다. 그나마 안철수가 윤석열보다 좀 나은 점 하나를 꼽자면, 그는 골프는 안 친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정부에서 유류세 인하 대책을 내놓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고위직 특히 경제 고위직 중에서 환경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3조~4조원 혹은 그 이상의 세수 감소는 확실한데, ℓ당 몇 백원 수준 감소라서 체감할 지원 효과는 그렇게 높지 않다. 그나마도 정유사 이문으로 빠질 여지도 있고, 유류세 인하는 고소득일수록 지원효과가 높은 역진적 성격이 강한 정책이다.

이렇게 허공에 몇 조원을 태울 거라면, 차라리 그 돈으로 전기차 아니 하이브리드 차량으로의 전환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플레이션과 고유가가 잠시 이러고 말 것이라면 임시 대책으로서의 유류세 인하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게 몇 달 안에 끝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차피 내연기관차가 영원할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경제적 조건을 미래를 위한 전환점의 계기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유럽 많은 국가들이 2030~2040년 정도로 내연기관차의 종말을 선언한 상태다. 고유가 자체가 문제라면 하이브리드 차량 구입에 대해서도 한시적으로 지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택시 등 상업용 차량에 대해서는 전면적 전환 등 좀 더 강한 지원책을 디자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류세 인하가 나은가, 친환경 차량에 대한 지원이 나은가는 기술적으로 매우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 내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기술적 옵션에 대한 대안을 검토해보고 유류세 인하가 정부 방침으로 결정되었느냐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경제관료들이 유류세 인하 방침을 검토할 때, 과연 장기적 대안이나 친환경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보기라도 했을까? 김영삼이나 김대중 시대에는 청와대 정책실장 주도로 중장기적 대안 검토 정도는 했었다. 2000년대 초반 중동 지역 불안으로 인한 고유가 시절에도 그 정도는 했다.

문제는 개발연대 시절의 ‘그들’

전기 택시로의 전환이나 전기 버스 증가, 저소득층 가정의 에너지와 전기 절감 대책 혹은 빌딩 리모델링 등 인플레이션을 친환경적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옵션은 많다. 독일은 ‘9유로 티켓’으로 한 달간 독일 전역의 교통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놨다. 문제는 총리나 경제부총리나, 이런 경제 ‘올드 보이’들이 환경은 귀찮은 것으로 간주하던 개발연대 시절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에게 친환경적인 사유를 기대? 연목구어다. 이러니 갑자기 김영삼 시대를 자꾸 회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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