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소멸과 균형발전 점수로 정치인을 평가하자읽음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위기를 상징하는 단어가 있다. ‘인구소멸’이다. 한반도 남쪽 땅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 줄고 있다. 경제활동 가능 연령대의 인구도 이미 줄었다. 비수도권(지방)은 인구 감소에 더해 수도권으로의 이탈까지 겹쳐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수준이다. 지방소멸이 가속화된 지방은 노인들만 남아 있다.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인구소멸은 확고부동한 이론이자 한국의 현실을 대변하는 단어다. 그럼에도 ‘웃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초고층 아파트가 끊임없이 세워지지만 내집 마련을 못하는 서민들은 여전하다. 대신 부동산으로 먹고사는 사람들만 배불려주고 있다.

지방 인구는 줄어들고 수도권으로는 인구가 몰린다. 부산·대구는 물론 큰 공장들이 밀집한 울산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에 모여든 사람들은 그러나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고 과밀화에 따른 교통난·주거난을 겪고 있다.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누구도 대안 마련은 뒷전이다. 국가든, 지방자치단체든,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자신만의 생존논리만 떠든다. ‘각자도생’ 상황이다.

인구소멸의 대안 중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시작된 ‘균형발전’이다. 세종시와 혁신도시도 균형발전 정책의 산물이다. 이후 정부는 균형발전을 외면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도 균형발전은 없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 1일부터는 민선 8기 지방자치도 개막했다. 이번에는 균형발전의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자치단체장들의 취임사와 각종 언론 인터뷰를 살펴봤다.

단체장들은 ‘지방의 위기’라는 명분으로 저마다 ‘개발’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는 근대화와 산업화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경까지 밀렸다”면서 대구통합 신공항을 건설하고 신공항 배후에 200만평 규모의 산업단지, 30만평 규모의 공항도시를 조성해 첨단 분야 대기업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120만명에 달했던 인구가 111만6400여명(올해 5월 기준)까지 줄어든 울산의 시정을 책임지게 된 김두겸 시장은 “일자리와 인구 해법을 그린벨트 해제에서 찾겠다”고 했다. 그린벨트가 해제된 곳에 산업단지와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개발논리는 광역단체장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홍태용 경남 김해시장은 동북아 물류산업의 거점 스마트 물류단지 400만평 조성 등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원강수 강원 원주시장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비롯한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 이상의 우량 기업을 대상으로 유치전을 벌이겠다고 했다.

그린벨트를 풀고, 공장을 짓고, 신도시를 만들면 인구소멸을 해결할 수 있다는 ‘착한 발상법’이다. 단순한 개발론으로는 기업 유치조차 힘들다. 인구를 늘리거나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은 더더욱 막을 수 없다.

기업들이 수도권보다 지방에 투자할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 지방 거주자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것보다 살던 곳에 정주하는 것이 행복도가 높다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비수도권 대학을 나와도 ‘지방대 출신’이란 비아냥 대신 서울의 어느 명문대학 못지않을 정도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교육제도의 근본적 ‘혁명’도 필요하다. 남성 인력 중심의 공장만 즐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양질의 일자리가 보장되도록 산업구조가 재편되어야 한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 등으로 생활의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체장들의 취임사에는 구체적 대안을 발견할 수 없었다.

지방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도 균형발전 방안이다. 그러나 균형발전의 구체적 대안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메가시티마저 흔들리고 있다. 사업이 가장 앞서 있는 부산·울산·경남특별연합(메가시티)의 경우 김두겸 울산시장과 박완수 경남지사가 다소 부정적 입장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윤석열 정부도 균형발전 전략이 부재하다. 오히려 수도권 규제완화로 귀결될 기업 중심 정책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자치단체장들마저 각자도생에 치중한다면 인구소멸과 지방소멸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방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영호남 지역 8개 광역단체장들에게 ‘영호남 반도체 동맹’을 제안하겠다”고 했다.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을 지방에서 육성하자는 제안이다.

균형발전이란 정부와 자치단체가 대원칙을 세우고 소통하며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로선 낙제점 수준이다. 인구소멸과 균형발전 점수를 내고 평가하는 선거제도까지 도입하는 방안도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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