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광장에 선다는 것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부당한 처우와 차별을 당할 때,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자격을 박탈당한 이들은 절박하게 공공장소를 점거한다. 집회의 자유는 최소한의 인권이기에 국가도 부정할 수 없다. 거리에 나와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실천은 인정받지 못한 몸들을 공중에 노출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이 공적 시민이고 노동자임을 증명한다. 페미니스트 정치사상가 주디스 버틀러의 언급처럼 집회는 몫이 없는 이들, 망각되고 애도받지 못하는 몸들이 한데 모여 공동체의 미래를 일시적으로 제시한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하지만 집회는 현장뿐 아니라 준비과정부터 투쟁의 연속이다. 특히 올해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여느 때보다 긴장이 더하다. 차일피일 미루던 광장사용 심사에서 서울시는 ‘(상의) 노출’과 ‘(혐오세력과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며 하루 사용만을 용인했다. 행사를 감시하고 채증하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태도는 형평성도, 당위도 없이 참가자들을 위축시킨다. 조직위원회는 유독 퀴어에게만 높은 기준을 들이미는 서울시에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 이번 주말 퀴어들이 행진한다. 여기에는 성소수자 인권단체 외에도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대중과 서구 대사관, 기업이 참여한다. 다양한 소속의 참가자들은 성소수자가 여기 있음을 외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고 당연히 이들 사이에도 위계와 긴장이 있다. 같은 집회일지라도 내부에는 불화와 갈등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올해는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가 스폰서십 파트너로 차량 행진을 이끈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차량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돈이 될 만한 연구 성과를 계약하고 특허권을 얻어 의약품을 독점한다. 이는 약가를 높게 책정하는 구실이 되는데, 제약회사는 지불할 수 있는 국가와 소비자에게만 유통함으로써 건강불평등을 야기한다. 이미 성소수자운동은 HIV/AIDS 위기 속에서 제약회사의 횡포를 경험했고, 최근 HIV 노출 전 예방요법으로 사용하는 ‘트루바다’ 역시 높은 약가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있다. 길리어드는 코로나19 치료제 독점으로 중·저소득 국가 시민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지난주 HIV/AIDS인권운동은 길리어드가 행진을 이끄는 데 대한 규탄성명을 냈고, 현장에서도 비판을 이어갈 것이다.

집회는 나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 외에도 공동체의 윤곽을 그리고, 집회 자체로 점거와 노출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민주주의와 권리를 요구하는 집회는 이미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올해 필자가 소속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행렬의 끝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함께 걸음을 맞춘다. 나와 다른 몸들을 환대하는 걸음은 행진의 풍경을 새롭게 만들며 공존의 감각을 체득할 것이다. 함께 살기를 요구하는 집회는 차별의 현장에서 변화를 시험하고 체화하는 삶의 전선이다. 16일, 광장에서 함께 행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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