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분열과 민주화체제의 위기

이일영 한신대 교수

지난 5월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는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라는 단행본을 펴냈다(신기욱·김호기 편). 필자는 이 책에서 한국 경제의 두 가지 구조적 분열, 즉 지역간·세대간 분열이 민주화 체제의 위기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논의한 바 있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

이일영 한신대 교수

이 분열은 코로나19 위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글로벌 체제의 재편과 겹쳐지고 있다. 경기후퇴가 본격화하면 두 가지 분열은 더 심화되고 1987년 이후 형성된 민주화 체제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요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각별한 위기감과 대책이 필요한 시기다.

87년 민주화 체제에 내재한 지역문제는 영호남 간 정치적 분열이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에는 수도권으로의 경제력 및 권력 집중 문제가 이전 시기와는 차원을 달리하여 전개되었다. 이제 영호남 갈등보다는 수도권·비수도권의 구조적 격차가 지역문제의 핵심이다. 비수도권 제조업 중심도시들은 2010년대 이래 ‘산업위기지역’으로 전환된 바 있다. 군산, 통영, 영암, 울산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이들의 경제적 위기는 정치적 불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부동산과 산업·일자리를 지역의 위기를 심화했다. 코로나19는 지역 간 부동산 격차를 확대했다. 2008년 위기 이후 수도권·비수도권 간 부동산가격 격차는 일시 축소되었으나,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부동산의 지역 격차가 확대되었다. 지역경제는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2020년 감소했던 지역 제조업 수출이 2021년에는 25%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수출이 회복된 품목은 반도체, 자동차, 전기·전자, 의약품, 화학 등이다. 이러한 회복 추세가 2022년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지역 격차가 완화되려면 지역경제의 생산성 증가, 신산업 발전, 글로벌 차원의 수요 지지가 계속되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 전망이 밝지 않다. 비수도권 산업위기는 민주주의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세대 간 불평등에 관한 논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실업률은 2012년부터 전반적으로 상승 추세다. 그중 청년(15~24세 또는 15~29세) 실업률은 전체 실업률 수준의 2배 정도이며, 2010년 이후 계속 상승 추세에 있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청년실업에 대한 단기대책을 구사했으나, 1980년대생 이후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나 소위 586세대에 비해 상위 임금 사다리로 올라갈 기회가 제약된 구조는 여전하다. 계층문제와 세대문제는 상당히 겹쳐져 있다.

2021~2022년은 세대적 분기가 정치적 균열로 표출된 시기다. 기존의 정치구도는 영남·보수·산업화세대 연합과 호남·진보·민주화세대 연합의 대립이 기본 축이었다. 그런데 이제 2030세대가 새롭게 스윙보터 역할을 적극 수행하고 있다. 이들이 정치적으로 등장한 경제적 배경으로는, 부동산 격차, 교육 및 일자리 기회의 공정성 이슈 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20대 대선에서는 세대 내부의 젠더 균열이 정치적으로 표면화된 바 있다. 청년 남성과 청년 여성의 투표 성향이 완전히 반대로 나타났다. 정치적 젠더 갈등의 원인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2015년 이후 청년 여성의 페미니즘 운동과 이에 대한 청년 남성의 반감이 결집되었다는 설명이다(김한나 박사). 경제적 배경을 살펴보면, 젠더·계층·지역 문제가 겹쳐져 나타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 연령 기준으로 보면 성별 임금격차는 여전히 큰 편이다. 그러나 2030세대의 성별 임금격차는 크지 않다. 2030세대의 실업률이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2030세대 여성 일자리 점유율은 증가하고 수도권의 청년 여성인구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 격차, 일자리 기회 문제로 청년 세대는 이전 세대의 경제적 라이프사이클을 재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구조 문제에 대해 정치권은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갈등을 동원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는 민주화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

정치권 전체가 경제적 분열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직속으로 국민통합위원회를 설치했고, 인수위 시절에는 지역균형발전위원회도 따로 둔 바 있다. 이들 위원회에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에 병행하여 나타날 수 있는 구조적 분열을 보완하는 기능이 부여될 수 있다. 여야 정치권 모두 이들의 활동 공간이 좀 더 확장되도록 노력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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