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경 시대와 환경 포기 지역

우석훈 경제학자

내가 직업적으로 환경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다. 정몽구가 한때 환경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고, 마침 그 시절에 생태경제학으로 학위를 마쳤다. 좌파로 살면서 과연 밥이나 먹고 살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현대그룹이 잠시 환경에 관심을 가지면서 밥이나 먹고 사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한국에 환경에 관심이 가장 높던 때가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건 당시, 환경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이 지금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두산그룹 회장이 그 사건으로 물러났고, 두산의 많은 임직원들이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사실 따져보면 지금의 4대강에서 발생하는 식수원의 녹조 사건은 페놀 오염보다 몇 배는 더 위중하고, 여름마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만약 지금 낙동강 페놀 사건이 벌어졌다면? 4대강 사업이 그렇듯이, 대충 덮고 넘어갔을 것 같다.

보수 정권이라서 그런 것일까? 2004년 포스코가 광양만에서 독극물인 시안 폐수를 무단 방류한 사건이 있었다. 시안화칼륨은 흔히 청산가리라고 불린다. 페놀 사건보다 크다면 더 큰 사건이지만, 정치적으로 적당히 넘어갔다.

생각해보자. 지금 식수원을 주기적으로 위협하는 4대강 녹조 사건이 1991년의 낙동강 페놀 사건보다 더 가벼운 문제인가? 환경 문제로는 더 크고 구조적인 문제이지만, 식수원 오염 문제를 이제는 문제로도 안 본다. 30년 전보다 우리가 환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주위를 기울일까? 아니라고 본다.

고향에 원전 몰아넣은 한국 보수

물론 구조적 차이는 있다. 1991년에는 그룹 회장이 물러났지만, 지금은 더 큰일이 생겨도 환경 문제로 회장이나 사장의 자리가 직접 염려되는 일은 없다. 법적 책임을 지고 담당자만 처벌받으면 그만이다. 그게 ‘환경 경영’이 현실적으로 해 온 일이다. 책임자를 지정하는 것, 그리하여 그 위의 상층부들은 다치는 일이 없는 것, 그렇게 우리는 살아왔다.

다른 선진국과 한국 환경 문제의 차이점 딱 하나만 꼽자면, 정치인들의 자기 고향에 대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보수 정치인들이라도 자기 고향은 끔찍이 아끼고, 잘 가꾸려고 한다. TK, PK, 그런 게 한국 보수의 원류라고 알고 있다. 자기 고향에 이렇게 고밀도로 원전을 몰아넣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위세를 갖는 경우는 잘 보기 어렵다. 보수가 원래 자기 고향은 잘 지킨다. 미국 보수들도 그렇다. 가장 극단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국가 기본으로 삼는 스위스가 대표적이다. 영광을 제외하면 한국의 원전은 부산에서 경주 사이에 집중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보수가 한 것은 원전 때문에 땅값 내려가지 않게 원전 이름에서 지역명을 빼는 시도를 한 정도 아닌가? 예전에 원전 논쟁하면서 그렇게 자신 있으면 한강을 끼고 있는 여의도에 놓아보라고 한 적이 있다. 국회 옆에 그리고 한남대교 옆에 두 개쯤 원전을 놓는다면 나도 한국 원전이 안전하다고 인정하겠다.

결국 원전은 TK와 PK 지역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고, 고준위 폐기물도 적당히 원전 안에 보관할 것이고, 신규 원전도 이 지역 안에 들어갈 것이다. 자기 고향에다가 이렇게 무자비한 일을 하는 보수를 OECD 국가에서는 본 적이 없다.

근원을 따지면 4대강 녹조 사건과 최근의 원전 강행의 뿌리는 같다. 박정희와 이명박 등 한국의 보수들이 환경 오염시설들을 서울과 수도권을 피해서 자기 고향에 갖다 놓은 사건이다. 그러다 보니 밀도가 너무 높아졌다. 확산은 환경에서 중요한 전략이다. 대기 오염이든 수질 오염이든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확산시켜서 농도를 낮게 하는 게 맨 먼저 하는 일이다. 물론 역발상으로 오염을 집중시키는 경우가 있다. 고농도의 산업폐기물의 경우는 집중시키고 그곳을 환경 포기지역으로 만든다. 고농도 방폐장이 세계적으로 처리가 어려운 게, 그 지역이 현실적으로 환경 포기지역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고향 환경 포기권은 헌법에 없다

지금보다 원전 밀도가 높아지면, 그게 바로 환경 포기지역 아닌가 싶다. 자꾸 일본이랑 비교하는데, 일본은 국토 거의 전 지역에 고르게 원전을 흩어놓았다. 후쿠시마가 도쿄 바로 위에 있다. 한국의 보수들은 환경 문제에서는 스위스는 물론 일본의 보수들과도 다르다.

자기 고향에 오염시설들을 자꾸 유치하고 늘리려는 한국의 보수들, 이것도 애국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국토가 좁다. 포기해도 좋은 국토는 없다. 헌법 제120조 2항은 “국토와 자원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라고 말하고 있고, 국토는 균형 있게 개발하라고 되어 있다. 보, 원전, 이런 것들로부터 국토를 균형 있게 보호하는 게 국가의 일이다. 자기 고향이라고 환경적으로 마음대로 포기할 수 있는 권리는 헌법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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