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는 노란봉투법읽음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2019년 문재인 정부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시 경찰의 강제진압을 인정했다. 조사위는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동원한 테이저건, 다목적 발사기, 헬기, 기중기 등의 사용이 부당했으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과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를 취하할 것을 권고했다. 해고와 강제진압, 손배·가압류로 인한 생활고와 트라우마로 30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은 후였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경찰은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손배소송은 취하하지 않았다. 오늘도 쌍용차 노동자들은 배상 지연이자를 포함한 100억여원의 손배액으로 고통받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의) 긴 고통의 시간이 통증으로 남는다”는 대통령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노동탄압용 손배·가압류’를 규제하는 일명 ‘노란봉투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 특유의 공감능력은 임기 말까지 높은 지지율로 이어졌지만, 문재인 정부의 무능력은 이런 온정주의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국가폭력의 피해자로만 바라볼 때 그들이 제기한 잘못된 기업의 경영관행과 파업권을 무력화하는 손배·가압류의 근본적 해결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니 더 나쁜 형태로 되돌아왔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의 생존보다는 기업 경영의 어려움에 특히 더 많은 공감과 이해를 표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불법파업”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자 대우조선 사측은 “7000억원의 손해”를 입에 올렸다.

원청 소유의 조선소에 하청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이는 행위는, 원청 입장에서 제3자가 무단으로 시설물을 점거하고 생산을 중단시키는 불법적 행위로 간주된다. 어렵사리 파업을 통해 하청노동자가 원청인 대우조선을 교섭의 대상으로 지목한 이유는 노동자들이 손쓸 새도 없이 원청기업과 하청업체 간에 체결된 도급계약에서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이미’ 결정되기 때문이다. 계약서에는 하청노동자의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을 제한하는 독소조항 또한 버젓이 있다.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자의 파업권은 계약서가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는 원·하청 구조에서 유명무실해진다.

원·하청 구조를 정당화하는 ‘나쁜 법’에, 파업권 자체를 제한하는 손해배상이라는 ‘나쁜 법’이 더해져, 200만원 받는 노동자에게 7000억원 손해를 이야기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스스로를 0.3평의 철골감옥에 가둔 유최안 노동자는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가 있어도 되레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왜곡되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 법은 어디에 있는가?

노동자의 파업권은 시민으로서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의무이기도 하다. 기업이 시민의 풍요로운 공존에 기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이윤을 취할 때, 생산의 거점에서 이를 바로잡으려는 행위 중 하나가 파업이다. 이러한 행위가 가로막힐 때 기업의 무제한적 이윤추구는 사회적으로 규제하기 어려워진다. 노동자의 파업권을 회복하는 것은 동료시민의 권리와 함께 나의 권리를 확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딱한 처지’에 대한 온정과 ‘법대로’식의 사법적 냉정함을 넘어 시민으로서 타인의 자리를 함께 옹호할 때, 좋은 법은 그렇게 우리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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